김영철, 워싱턴 아닌 뉴욕行
제재 대상으로 비자 제한 가능성
조명록 2000년 특사 자격으로
클린턴 만나 김정일 친서 전달
북미 정상회담은 끝내 못 이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북미 정상회담 실무 협의를 위해 30일 미국 뉴욕을 찾는다면 2000년 10월 방미했던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인민군 차수) 이후 18년 만에 이뤄지는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미국행이다.
18년 전과 지금은 여러 모로 상황이 비슷하다. 조 차수의 방미 목적도 북미 정상회담 준비였다. 당시 북한 권력 서열 2위로 평가됐던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과 함께 2000년 10월 9~12일 미국에 머물렀다.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 발표로 북핵 위기가 수습되고,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선언, 첫 남북 정상회담 등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에서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였다.
조 차수 방미를 계기로 북미관계 회복세는 더 가팔라질 듯했다.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보장 체제 수립, 미 국무장관 방북 등이 주요 내용인 ‘북미 공동 코뮤니케’가 당시 채택되면서다. 특히 코뮤니케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미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기되면서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 첫 북미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추진 동력이 사그라들면서다. 임기 말 추진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고, 그 해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가 승리하면서 정권이 교체됐다. 또 마침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중동 분쟁 해결을 요청해 오면서 북미관계로 쏠렸던 시선이 분산됐다.
김 부위원장 중량감은 조 차수에 뒤지지 않는다. 비핵화와 북미관계 전반을 총괄하며 북미 정상회담 전 과정을 조율해 온 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도 그다. 올해 각 두 차례씩이었던 남북, 북중 정상회담에 모두 배석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위상의 김 부위원장이 미국에 가는 건 미측 카운터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의제ㆍ합의문 조율 등 2주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방안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이 여전히 첨예한 상황에서 두 정상의 뜻을 꿰뚫고 있는 북미의 실질적 2인자끼리 최종 담판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방미 기간 김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도 크다. 이럴 경우 김 부위원장의 자격이 고위급 협상 대표에서 대미 특사로 바뀌게 되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 특사였던 조 차수도 국무부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면담한 뒤 백악관으로 가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예방했고, 그 자리에서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 부위원장이 수도인 워싱턴 대신 뉴욕으로 향한 건, 그가 미국 독자 제재 대상인 데다 북미 간에 공식 외교 관계가 없어 유엔 북한대표부가 있는 뉴욕으로 비자 발급이 제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선 나온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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