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프’ 낸 20대 4인
“문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곁에 두고 읽게 하는 게 목표”
글 半, 사진 半 돈 쓴 티가 나
적자 났지만 도전은 계속
문학은 오직 진지해야 할까. 문학하는 사람은 문학만 하느라 촌스러워야 할까. 그리하여, ‘그들만의 문학’이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거부하는 20대 작가들이 새로운 문예지를 창간했다. 문학을 패션으로 읽은 비주얼 문예지, ‘모티프(Motif)’다. ‘문학레이블 공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유수연(25), 이리(25), 김의석(26), 이유수(25)씨의 도전이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동문들이다. 25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들은 “학교 얘기는 기사에서 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대학 동아리의 철없는 실험’ 정도로 비치는 게 싫다는 거였다. 이들의 꿈은 그렇게 크다.
지난달 나온 144쪽짜리 창간호는 글 반, 사진 반이다. 문보영 시집 ‘책기둥’(2017)의 시 다섯 편을 이야기로 풀어 패션 사진으로 시각화한 건 ‘스토리텔링 아트워크’라는 꼭지의 기획. 육호수, 류진 시인과 김남숙, 임국영 소설가는 화보 모델로 나섰다. 그럴듯하다. 사진 촬영비로 600만원을 아낌없이 쓴 ‘티’가 난다. 종이도 다르다. 사진집, 전시 도록에 사용하는 비싼 르노아르지를 썼다. “패션 잡지 ‘보그(Vogue)’처럼 만들고 싶다. 문학을 모르는 사람도 사서 곁에 두고 읽게 하는 게 목표다.”(유수연) 박상수 시인과 황현경 문학평론가 등의 글도 실렸다.
문학이 휘청거리고, 문학 작품을 싣는 잡지인 문예지는 더 휘청거린다. 패션을 얹는다고 문예지가 살아날까. 그러나 이들이 살리려는 건 문예지가 아니다. 문학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문학은 존재 이유가 없다. 문학이 엄숙주의에 갇혀 있는 한 회생 가망이 없다. 어떻게든 사람들이 문학을 만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문학이 팔리고 문학하는 우리의 미래도 열린다.’ 그게 모티프의 접근 방식이다.
“문인도 ‘힙’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자는 거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는 되는데, ‘슈퍼스타 문학’은 왜 안 되나. 사람들이 힙합 가수를 동경하는 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멋진 사람으로 여겨서다. 글 쓰는 사람도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는 시대를 기다린다.”(이리) 어리석은 독자가 문학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만한 문학이 독자를 찾아가지 않는 게 문학의 위기를 불렀다는 인식이다.
유씨는 지난해 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등단 시인이다. 다른 세 명은 움츠리지 않았다. “우리도 시인이고 작가다.” 네 사람은 등단 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신춘문예, 문학상에 한 번 뽑히는 것이 평생 시인, 소설가로 행세할 자격을 주는 부조리에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등단 여부를 따지지 않고 글을 받고 작가를 섭외했다. 책 표지에 작가 이름을 쓰지 않은 건 작가 이름 값으로 책을 파는 기성 문예지를 꼬집은 시도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그 자체로 있을 뿐, 등단을 목표로 문학을 고민하지 않는다. 다양한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장을 만들고 싶다.”(이유수) 책에 실린 글 값도 기성 문예지의 두 배쯤으로 후하게 줬다. 책은 1만5,000원이다. 문단 권력을 대표하는 문예지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와 같은 가격이다. 가격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다.
패션 문예지를 만들기로 한 건 지난해 10월쯤이다. “우리 모두 문예지를 열심히 읽는다. 정기구독도 한다. 그런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사람 옆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문예지를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김의석)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으로 창간호 제작비 700만원을 모금했다. 서울 성산동에 얻은 작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만들었다. 학교 다닐 때 교지도 만들어 본 적 없는 네 명이 교정교열, 편집까지 직접 했다. 그런데도 400만원쯤 적자가 났다. 1,000부를 찍어 600부 조금 넘게 팔렸다. 실은 광고를 한 건도 유치하지 못했다. ‘문학동네 북클럽’을 비롯한 출판사 광고를 직접 제작해 ‘공짜로’ 실었다.
문예지의 씁쓸한 현주소. ‘모티프’ 창간호를 대형 서점에 공급하면서 ‘정기간행물 중 문예지’로 분류했다. 문예지가 서점에서도 찬밥 신세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문예지 판매대는 구석에 처박혀 있다.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 호부터는 서점의 제일 목 좋은 곳에서 팔리는 ‘패션지’로 넘기기로 했다. 네 명의 도전이자 패션 문예지의 생존 실험은 계속된다. 10월 발간 목표인 2호의 기획과 작가 섭외가 이미 끝났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계간지로 내는 게 목표다. “2년 정도 참고 가려 한다. 앞으로 2년이 손익분기점이 될 거라 예상한다. 돈 되는 문예지는 어차피 우리 말고도 없다.”(이리)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우진(숙명여대 법학 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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