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파 프로젝트와 이준상씨
묘기 통해 한편의 드라마 전달
새단장한 옛 구의취수장에 둥지
“거리 공연서 특히 매력 느껴”
그림 1서커스를 하는 청년들이 25일 서울 광진구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연습 도중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준상(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씨와 극단 ‘시파 프로젝트’. 서울문화재단 제공

아직도 서커스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 25일 찾은 서울 광진구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선 두 팀의 서커스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준상(28)씨가 중국식 요요(디아볼로)를 천장 위로 높이 던지더니 폭 1㎜ 남짓한 줄로 가뿐히 받아냈다. 한 쪽에선 ‘시파 프로젝트’의 권해원(26)씨와 김현기(26)씨가 외발자전거를 타고 서로를 쫓고 쫓았고, 같은 팀 엄예은(24)씨는 대형 트램펄린 위에서 공중으로 가볍게 튀어 올랐다.

인류의 오래된 예능 서커스는 1960년대 매스미디어의 보급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듯 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에 서커스가 신기한 볼거리로의 위상을 잃어버린 탓이다. 서커스는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재기를 노리기 시작했다. 서커스 학교가 생겼고 서커스를 무용, 음악, 연극과 접목해 하나의 공연 작품으로 올리는 움직임이 일었다. 서커스가 단순 기예의 향연이 아닌 한 편의 공연 예술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가 대표적이다.

이씨와 시파 프로젝트의 서커스 역시 코끼리가 등장하고 고난도 묘기를 뽐내는 과거의 쇼와는 거리가 멀다. 이씨는 주로 디아볼로와 여러 개의 공을 써서 저글링을 하는 ‘아기자기한’ 서커스를 추구한다. 중학생 때부터 마술에 빠져 살던 이씨는 대학 재학 당시 해외 축제에 갔다가 거리 공연들을 본 뒤 ‘서커스 저글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4년째 국내와 해외 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날갯짓’이 그의 대표 작품이다. ”디아볼로와 제가 연인으로 나오는 사랑 이야기죠. 오브제(디아볼로)는 작품에서 ‘나비’로 형상화했어요. 제가 나비인 디아볼로에게 이끌려 따라갔다가, 낚아채기도 하고, 스킨십도 있죠. 또 다른 공연인 ‘서커스 올림픽’에선 인간성에 대해 다뤄요. 여기에선 디아볼로를 트로피로 형상화했죠.”

그림 2이준상씨가 '디아볼로'를 활용해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이준상씨 제공
그림 3이준상(오른쪽)씨의 또 다른 공연 '서커스 올림픽' 포스터. '디아볼로'를 트로피로 형상화했다. 이준상씨 제공

용인대 연극학과 졸업생 15명으로 이뤄진 극단 ‘시파 프로젝트’는 본인들의 공연 장르를 아예 ‘서커스 이미지 시어터’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파도의 시작(始波)’이란 뜻을 담은 극단 이름처럼 새로운 예술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들의 공연 ‘로봇필리아’에서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권해원씨는 서커스 이미지 시어터를 “서커스를 통해서 이미지를 뽑아내 드라마를 전달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거리에서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표현하기 위해 서커스를 접목했어요. 물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트램펄린 위 몸짓으로 나타내는 식인 거죠.”

최근 국내에서도 서커스의 대중예술, 공공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지원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은 2010년 폐쇄한 ‘구의 취수장’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로 리모델링해 서커스 연습실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천장이 아파트 4층 높이인 14m에 달해 공중 곡예 연습이 가능한 시설이다. 서커스 작품 제작 지원, 서커스 전문가 양성을 위한 ‘서커스 펌핑 업’, 기예별 워크숍인 ‘서커스 점핑 업’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림 4'시파 프로젝트'의 공연 '로봇필리아'의 한 장면. 시파 프로젝트 제공
그림 5'시파 프로젝트'의 배우들이 트램펄린 위에서 공연하고 있다. 시파 프로젝트 제공

서커스 무대는 한정돼 있지 않지만 이들은 특히 ‘거리 공연’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이준상씨는 거리 공연을 “‘감히’라는 것이 없는 평등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무대를 감히 올라가도 될까, 세트를 감히 건드려도 될까, 이런 것 없이 아이들과 할머니가 다가와 붙잡고 말을 걸어요. 차별 없고 경계 없는 공연이죠. 이런 불안정성이 오히려 너무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 같아요.”

엄예은씨도 “연극할 때는 관객들이 돈을 내고 표를 사서 오기 때문에 항상 평가 받는 느낌이라는 게 있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거리극은 누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게 완전히 다르죠. 공연 중에 함성도 들리고 아이들 웃음 소리도 나는데 방해 받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자유롭고 짜릿한 기분이 들어요.”

이들은 서커스 인구의 저변 확대를 꿈꾸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던 ‘서커스 캬바레’처럼 서커스만을 주제로 하는 축제도 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씨는 “누군가 저한테 디아볼로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제가 도움을 받았듯이 얼마든지 잘 가르쳐줄 의향이 있다”며 “이런 기술을 배우고 나누면서 서커스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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