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태극전사 권창훈
프랑스 리그서 아킬레스건 다쳐
수술 잘됐지만 재활 6개월 이상
“일찍 안 보내준 구단 원망 안 해”
카타르 월드컵 두 배 활약 기대
“차라리 생떼를 쓰고 누굴 원망하면 좋겠어요. 티를 안 내고 애써 의젓해하는 걸 보니 그게 더 마음 아프네요.”
최근 프랑스에서 오른쪽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은 국가대표 미드필더 권창훈(24ㆍ디종)을 직접 만나고 온 에이전트 최월규 월스포츠 대표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창훈은 지난 20일 앙제와 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31분 부상을 당했다. 오른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곧바로 수술을 받았고 재활까지 6개월 이상 걸려 러시아월드컵 출전 꿈을 접어야 했다.
부상 소식을 들은 신태용(49) 축구대표팀 감독이 “참담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대표팀의 핵심 전력이었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도 물거품 됐다. 아시안게임은 23세 이하 선수만 출전하는데 팀 당 최대 3명까지 23세를 초과하는 와일드카드를 쓸 수 있다. 권창훈은 손흥민(26ㆍ토트넘)과 함께 와일드카드 후보 1순위였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만 바라보던 권창훈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지만 그는 덤덤했다. 디종은 지난 24일 수술이 잘 됐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권창훈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 속 그는 엄지를 든 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앙제와 최종전은 잔류를 일찌감치 확정한 디종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기였다. 신 감독은 “올리비에 달롤리오 디종 감독에게 권창훈을 1주일 일찍 보내 달라 요청했는데 다른 선수와 형평성 문제로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구단이 원망스러울 텐데 최 대표에 따르면 권창훈은 “(원망은) 전혀 없다. 다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프로축구 수원 삼성 시절부터 어린 나이답지 않게 진중하고 심지가 굳어 별명이 ‘애늙은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는 걸 바로 옆에서 목격한 뒤 혹시 아버지 건강에 해가 될 까봐 ‘이거 사 달라’ ‘저거 해 달라’라고 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구단 단장과 달롤리오 감독은 크게 미안해하며 권창훈의 회복을 위해 모든 걸 돕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는 내년 초 복귀를 목표로 한다. 최 대표는 “불행 중 다행으로 아킬레스건이 50%만 파열됐다. 6주 정도 깁스를 하고 프랑스의 유명 재활 센터 중 하나를 선택해 본격 재활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초, 다음 시즌 후반기부터 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권창훈은 격려 메시지를 보내온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답장하지 못한 걸 미안해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대표팀이 러시아월드컵에서 꼭 잘 됐으면 좋겠다. 프랑스에서 열심히 응원 하겠다”고 신태용호를 향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부상 잔혹사’는 월드컵 때마다 되풀이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는 황선홍(50),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에는 이동국(39ㆍ전북),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곽태휘(37ㆍ서울)가 쓰러졌다. 셋 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4년 뒤 기어이 ‘꿈의 무대’를 밟았다. 특히 황선홍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골을 책임지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놨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권창훈이 훨훨 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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