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반려견 자가진단 후
도덕ㆍ미술ㆍ체육ㆍ가정…
학교처럼 체계적인 전인교육
반려견마다 진단 제각각
“몇 주 교육으로 쉽게 교정 안 돼
반려인이 꾸준히 변화 유도해야”
비단결 같은 새카만 털. 조그만 얼굴에 앙증맞게 자리 잡은 눈과 코. 짤따란 꼬리와 늘씬한 다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이름은 아, 나의 반려견 ‘초원’(13ㆍ미니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식구가 된 이 생명체는 어느새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보 1호’가 됐고, 세상 어떤 개와 견주어도 충성심과 의리, 귀염성 등의 면면에서 뒤질 바가 없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런 착각은 종종 이 개에게 눈곱만큼의 애착도 없는 타인과 마주했을 때 산산이 깨어진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이웃이 “6층 사는 그 검은 개, 짖을 때마다 콱 쥐어박고 싶다”며 수군거릴 때, “무슨 애완견이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냐”며 행인이 야단을 칠 때, 초원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밉상스런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사실 초원은 지난 십수년간 ‘불량이웃’으로 존재해 왔다.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옆집 꼬마에게 달려들기. 산책하는 어르신들에게 으르렁거리기. 주차장 계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애꿎은 주민들에게 짖어대기, 지나가는 반려견 물기, 째려보기, 할퀴기, 덤벼들기, 침과 콧물 튀기기, 희번덕거리기, 게거품 물기 등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꼬리치며 반가워하는 천생 모범견들과 다르게 초원은 사회부적응견, 패륜견, 날라리견에 가까운 견생을 살아왔음을, 반려인으로서 인정 또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반려인 필수 덕목이 된 페티켓… 공공교육 받아볼까
네 집 중 한 집(반려동물보유가구 비율 28.1%ㆍ2017년 기준)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펫티켓(Pet+Etiquetteㆍ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이 됐다. 동물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전문 훈련가가 반려견을 노련하게 교육시키는 모습도 이젠 흔한 장면이 됐다. 초원의 무례함을 용인하며 살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펫티켓 교육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교육센터의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가정방문이나 유치원 형태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업체들도 많지만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교육’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기회였다.
일회성 행사 대신 직접 교육센터를 개소해 본격적으로 교육 사업을 실시하는 곳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울시는 안양천이 인접한 구로구 구로동에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서울반려동물교육센터’를 열고 내달부터 강의를 개설할 예정이다. 서울 강동구는 지난해 11월 유기동물 입양과 반려동물 교육이 가능한 입양카페 ‘강동리본센터’를 열었다. 이곳에선 2년째 반려견 행동교정 프로그램인 ‘강동서당’도 운영되고 있다. 교육비가 비싸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사설업체 대신 교재비 2만원만 지불하면 전문 훈련가들에게 5회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강동서당에 참가해보기로 결정했다.
짖고, 물고, 제멋대로… “우리 강아지도 바뀔 수 있을까요?”
강동서당 1회차 교육이 열린 지난 26일 오전 13마리의 반려견과 20여명의 보호자들이 강동리본센터로 모였다. 도착한 순서대로 한 마리씩 입장해 출석 체크를 하고, 교과서와 알림장, 이름표를 교부 받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광견병 접종을 받은 반려견만 수업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증명서를 제출하는 것도 필수다.
실내 교육장에 들어서면 가림막이 세워진 자리에 한 마리씩 착석한다. 반려견들이 서로 붙어있으면 흥분하거나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림막을 통해 시선을 가리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럼에도 몇몇 반려견들은 안정을 찾지 못하거나 가림막을 넘어뜨려 교실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소형견인 초원은 다행히 대기 신세는 면할 수 있었지만, 다른 반려견이나 보호자들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는 바람에 전후좌우 사방으로 가림막을 세워야 했다.
1교시 오리엔테이션은 보호자들이 반려견들의 문제점을 짚는 ‘자가진단’으로 시작된다. 교육을 받게 된 사연도 갖가지다. 유영식(60)씨의 경우 대형 경주견인 휘핏 ‘루이’를 데리고 삼부자가 함께 교육장을 찾았다. 유씨는 “3개월 전 산책을 하다가 다른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뒤부터 개들을 보면 심하게 짖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록키’의 보호자 안상희(30)씨는 “최근 반려동물이 늘면서 사람이 개에 물리는 사고도 종종 발생해 반려인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며 “(반려견이)아직까지 이웃에 특별히 피해를 끼친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가 없던 개도 어떤 계기에 의해 성격이 바뀌는 사례도 있다. 푸들 ‘예리’의 보호자 김선희(58ㆍ가명)씨는 “피부병을 앓아서 산책 횟수를 줄였는데 그 이후부터 밖에 나가면 짖는 증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짖거나 무는 등의 문제행동을 고치기 위한 특별한 모범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강동서당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학교처럼 도덕, 미술, 체육, 가정, 개별상담 등 체계적인 ‘전인교육’이 이뤄진다. 보호자들이 반려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쌓는 도덕 시간은 ‘반려인 행동강령’을 크게 소리 내 읽는 것부터 시작된다. ▦반려견의 배변은 반드시 치운다 ▦산책 시 목줄을 꼭 채운다 ▦모든 개가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등 평소에 지켜야 할 핵심 규범들을 읊으면서 책임감을 고양하는 과정이다.
미술 시간에는 반려견이 착용하는 목줄을 직접 만들어본다. 보호자의 손목과 반려견의 머리 크기, 목 굵기에 맞춰 목줄을 직접 제작해 도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반려견의 움직임에 따라 길게 늘어나는 자동 목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강동서당 담임교사 서지형 훈련가는 “자동 목줄은 위급한 상황에 목줄을 줄이지 못하거나 보호자가 늘어나는 목줄에 손을 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가급적 길이가 제한된 목줄을 쓸 것을 조언했다.
보호자와 반려견이 본격적으로 교감하는 법을 배우는 체육 시간.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눈 맞추기’ 훈련이 가장 기본기다. 반려견의 주의가 산만할 때 이름을 부르고, 보호자와 눈을 맞추면 밝은 목소리로 “옳지!”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주면 된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70대에 가까운 초원은 어린 반려견에 비해 훈련을 체득하는 속도가 느릴 순 있지만, 자주 연습하면 더디더라도 습관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게 훈련가들의 설명이다.
교육만으로 개과천선? 보호자 습관부터 바꿔야
영양학을 배우는 가정 시간이 마무리되고 나면 반려견마다 고유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개별 상담 시간을 갖는다. 초원은 산책 기회가 적고 다른 반려견들과 어울려본 경험이 부족해 낯선 사람이나 개를 보면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보호자부터 반려견을 자주 산책시키는 방향으로 생활 습관을 들여야 하는 문제라, 단순히 몇 차례 교육을 수강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려견의 문제행동도 전문가 훈련으로 손쉽게 교정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함께 사는 보호자가 가정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을 시키고 칭찬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서지형 훈련가는 “몇 주간 교육으로 반려견이 개과천선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면서 “반려인 스스로 반려견의 잘못된 행동을 유도하는 습관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교육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초원에게 내려진 처방은 일주일에 최소 네 번 10분씩 집 앞 산책하기. 야외에서 낯선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사회성이 길러진다는데, 이렇게 쉬운 일조차 실천을 안 했다니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 진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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