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확인하고도 수사 의뢰 등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 결국 공은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수사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검찰은 대법원 수뇌부의 최종 입장을 확인하고 조사단 발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신중한 모양새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에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가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특별조사단이 법관 동의나 영장 없이 컴퓨터를 열람했다며 김명수 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올해 1월 참여연대 등은 박근혜 정부 시절 재직했던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불법사찰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그간 “관련 사건 진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는 유보적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대법원과 별도로 단순 3심 사건 재판)을 반대했다고 해서 뒷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차성안 판사가 고발 의사를 밝히면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해졌다. 앞선 시민단체 고발이 불특정 사실관계에 대한 의혹 제기였다면, 차 판사의 예고된 고발은 이번 조사단 결과를 토대로 한 특정 피해자의 고발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법관 사찰이 조직적ㆍ체계적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졌는지 여부지만, 실제 직권남용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장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자료나 평가를 수집한 건 도의적으로는 비판 받을 수 있지만 재판에 간여하거나 인사로 불이익을 준 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자칫 ‘검찰 법원 간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어 검찰의 보폭이 제한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먼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질 경우, 검찰의 사법부 직접 수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결국 법원 조직의 안정화를 꾀할 것인지, 부적절한 처사를 엄정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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