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지난 한 해 단속된 마약류사범은 1만4,123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에 있거나, 형기를 채우고 석방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부는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하고, 기소유예처분으로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풀려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죗값을 충분히 치렀으니, 이제는 마약류중독자의 삶을 청산하고 건강한 시민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에 관한 통계나 연구결과는 없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럴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다. 불법 마약사용은 범죄이지만, 마약중독은 일종의 뇌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중독은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치료 가능한 뇌질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범죄자로서의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은 치료 및 재활교육이 필요한 환자인 것이다.
이들이 치료나 재활교육을 충분히 이수했다는 통계나 증후는 발견하기 어렵다. 전국 53개 교정시설에 복역 중인 재소자에게 재활교육을 일부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종사자의 전문성과 교육성과의 피드백 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50%에 육박하는 높은 재복역률은 교정시설 수용을 통한 해결방안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교정시설 외에서의 치료ㆍ재활교육도 미흡하다. 유명무실화된 치료보호제도는 재정비 대상이지만, 그나마 그 성과가 입증되고 있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자에 대한 재활교육은 그 대상자가 2012년 131명에서 2016년 648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역시 한정된 전문가 풀과 예산의 부족 등으로 충분히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중독 그 자체의 치료나 재활교육을 위한 처우는 여전히 매우 부족해 보인다.
중독으로부터의 재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검찰과 경찰에 단속된 것이 오히려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치료 및 재활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마약류 중독은 의지 박약에서 비롯하는 범죄라는 비과학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독자들은 전과자라는 낙인과 마약류중독자라는 사회적 인식의 이중적 낙인 속에서 스스로 중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은 재사용, 재수감을 되풀이하다 합병증, 우울증, 자살 등의 유형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하루가 멀다 않고 마약류 단속기사가 나온다. 지난 5년간 마약류사범의 누적 통계는 6만여명에 이른다. 다른 범죄보다 재범률이 높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이미 수만 명의 마약류 사범이 있다는 말이다. 단속되지 않고 숨어 있는 중독자들은 3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20, 30대 젊은 층과 여성중독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마약청정국은 이미 아니다.
그렇다고 상황을 탄식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때이다. 우선 마약류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 국민 대상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라도 그 무서운 중독의 세계에 발 들여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예방은 훨씬 효과적이다.
한편, 이미 여러 가지 경로로 마약류에 노출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ㆍ재활 시스템이 필요하다. 환자에게는 치료가 우선이다.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울러 재활 관련 전문인력의 양성도 서둘러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는 유엔에서 추구하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의 흐름에도 부응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때, 우리는 곤경에 빠진 이유에 의해 대상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라 하더라도 회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다른 복지 대상자들과 동등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월 26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이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마약류중독자 재활정책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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