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기로 마음먹고 처음 도전한 오디션에서 주연을 따냈다. 그 영화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의 선장은 배우들이 그토록 선망해 마지않는 이창동 감독이다. 벼락처럼 들이닥친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영화 ‘버닝’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의 상당한 몫은 신예 전종서(24)의 것이다. 최근 칸 현지에서 마주한 전종서는 그 관심들을 묵묵히 감당하면서도 그에 휩쓸리지 않으려 자기 중심을 올곧게 세우고 있었다. 그는 “전종서라는 사람의 어떤 면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며 “이 모호함이 분명해질 수 있게 앞으로 나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버닝’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무력감과 분노를 들여다본 작품이다.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 종수(유아인)는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에게서 세련되고 부유한 청년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고, 벤은 종수와 해미를 자신의 세계에 초대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해미는 종수와 벤 사이에 내재된 계급갈등에 불씨를 던지고 이야기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크린에서 전종서는 해미 그 자신인 듯 보인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지배한다. 대담하고 강인하다. 전종서는 칭찬의 말들에 이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을 떠올렸다. “감독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이해하고 계셨어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제가 자유롭게 놀면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게 언제나 숨죽여 기다려주셨어요. 또 유아인 선배와 스티븐 연 선배가 없었다면 제가 해내지 못했을 순간도 정말 많았습니다.”
전종서의 첫 촬영은 마트 판촉 행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해미가 택배 배달하러 온 종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종수를 바라봐야 하는데 자꾸만 눈길이 카메라를 향했다. 캐릭터와 작품 연구보다도, 카메라 앞 동선과 감독의 촬영 사인 같은 기본 요소를 익히기가 더 어려웠다. 생애 첫 경험이니 당연했다. “카메라가 왜 그리 크게 느껴지던지 무섭고 겁이 났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너무나 꿈 꿔 온 일이라는 거예요. 매 순간 재미있었고 즐길 수밖에 없었어요.”
해미가 종수의 시골 집 마당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숨막히는 영상미와 풍성한 메타포로 관객을 압도한다.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해미의 춤은 아름다워서 슬프다. “노을은 지고, 꽃은 시들고, 불꽃놀이도 끝나고, 사그라지는 모든 존재는 슬퍼요. 제가 춤을 추던 그 순간에도 그랬던 거 같아요. 예전에 tvN ‘윤식당’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노을을 보다가 눈물 짓는 장면을 녹화해서 여러 번 돌려 본 적이 있어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10대 때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자란 전종서는 엄청난 영화광이다. 집에 있는 날에는 온 종일 영화만 볼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지냈고 지금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택한 배우의 길이지만,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1년을 다니다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선 갈증을 충족하지 못했다. 학원에서 연기를 배우다 현재 소속사를 만났고 3일 뒤 ‘버닝’ 오디션을 봤다. “기회는 정말 많지만 정말 없기도 해요. 연기하고 싶어하는 사람 모두가 그 꿈을 실현하는 것도 아니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도전하는 거잖아요. 포기하지 않는 게 능사인 것만도 아니고요. 저 역시 그 중 한 명이었어요. 이 모든 것들이 미스터리 같아요.”
자신을 객관화하는 태도가 신인답지 않다. ‘버닝’ 이후 전종서가 더 궁금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버닝’이 앞으로 행보에 기준이 될 거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어떤 감독, 배우와 일했느냐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존중 받은 경험이 저에겐 소중해요. 여기서 제가 배우고 느낀 모든 것이 삶의 기준이 될 거 같아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흔한 질문에도 그는 비범한 답을 들려줬다.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작품 안에서 누군가를 대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풍부한 경험과 연기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겠죠. 배우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놓치지 않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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