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폭파 전 갱도 인근 이동
축구공 크기ㆍ모양 폭약 설치 확인
오전 11시 2번 갱도부터 폭파
입구 폭음 뒤 안쪽 두 차례 더 폭음
굉음과 함께 계곡 짙은 안개 자욱
오후에 4번→3번 순 연쇄 폭파
관측소ㆍ막사 등 외부시설도 폭파
시각적 효과 극대화 노린 듯
“촬영 준비됐습니까? 3! 2! 1!”
24일 오전 11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공언한 폐기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북측 초청을 받아 모인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취재진에게 북측 인사가 물었다. 2번 갱도에서 오른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지점에서 군인 4명이 폭파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준비됐다”고 답하자 카운트다운 뒤 폭파가 이뤄졌다. “꽝” 소리가 만탑산 일대 지축을 흔들었다.
폐기 의식은 2번 갱도와 관측소를 폭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2009년 5월 2차부터 지난해 9월 6차까지 5차례의 핵실험이 이뤄진 2번 갱도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심 시설이다.
폭파와 동시에 핵실험장을 둘러싼 해발 2,205m 높이의 만탑산을 굉음이 흔들었다. 갱도 입구에서 흙과 부서진 바위들이 쏟아져 나왔다. 갱도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뒤 안쪽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듯한 두 차례의 폭발음이 추가로 들렸다. 갱도 내부 폭파에 따른 것이었다.
2번 갱도 폭파 뒤 채 15초가 지나기 전에 갱도 부근 외부 관측소가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계곡 전체에 자욱했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폭파된 관측소에서 부서져 나온 파편들로 사방이 뒤덮였다.
3시간 뒤인 오후 2시 14분에는 4번 갱도와 단야장이 폭파됐다. 단야장은 금속을 불에 달궈 벼리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2시 45분에는 생활건물 본부 등 5곳이, 4시 2분에는 3번 갱도와 관측소가 각각 폭파됐다. 2012년 3월 굴착이 완료된 3번 갱도와 굴착이 잠시 중단됐다가 지난해 10월 재개된 4번 갱도는 추가 핵실험에 활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ㆍ관리되고 있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오후 4시 17분 남은 2개 동 막사(군건물)를 폭파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4개 갱도 가운데 1번 갱도는 이미 방사능에 오염돼 폐쇄된 곳으로 이날 별도 폭파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북한은 핵실험장 폭파를 전후해 기자들이 갱도를 가까이서 보도록 안내했다. CNN은 이날 현장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토대로 “폭파를 지켜보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전 기자들은 폭발 전 갱도들 안에 설치된 폭약을 보도록 초대받았다”고 전했다. 윌 리플리 CNN 기자는 “북측은 기자들이 갱도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지만 갱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현장 기자들은 축구공 크기와 모양의 폭약들이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기자들은 폭파 후 현장에 다가가 손상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방사성 물질 출루 현상이 전혀 없었고, 주위 생태 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핵실험장 폐기는 2번→4번→3번 순으로 갱도와 부속 시설을 연쇄 폭파하는 방식으로 5시간 동안 시행됐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중앙에서 폭파 지역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시차를 두고 지역별 폭파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12일 북한 외무성은 공보를 통해 ‘갱도 폭파→입구 매립→구조물 및 인력 철수’라는 3단계 폐기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이 갱도 입구 위주로 파괴했는지 아니면 갱도 내부를 완전히 파괴했는지 같은 구체적 폭파 방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북한은 관측소, 생활 건물 등 외부 시설 폐기 방식도 철거 대신 폭파를 선택했다. 당초 북한에서 해체 또는 철수하겠다고 밝힌 외부 시설에 대해 폭파를 선택한 이유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갱도 등 내부 폭파만 이뤄질 경우 외부에서는 날리는 먼지 정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이날 풍계리 현지에 도착한 8명의 남측 공동취재단을 비롯한 5개국 취재단은 현지 3번 갱도 위쪽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폭파 장면을 지켜봤을 것으로 추측된다.
핵실험장 폭파 이후 과정은 매립이 될 전망이다. 매립 방법으로는 콘크리트 매설이 거론되나, 소요 시간과 자금 등의 한계로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갱도가 1~2㎞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막기 어렵다”며 “콘크리트 매립이 어려울 경우 내부 벽면을 붕괴시키고 입구까지 붕괴시키면 조금 더 확실한 폐기 방법이 된다”고 설명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풍계리=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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