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태용(49) 축구대표팀 감독 인터뷰가 도마에 올랐다.
신 감독은 지난 19일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도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토로했다.
신 감독 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한국 축구 수준에 비춰볼 때 국가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기대치만 유독 높은 편이다. 감독, 선수에 대한 비판도 가혹하리만큼 지나칠 때가 많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기는 걸 좋아한다. 이기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해야 한다. 축구를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축구를 즐기고 사랑하고 많이 하게 되면 잘하게 된다. 우리는 뒤바뀌었다”고 뼈 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신 감독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축제다. 평소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이 관심 갖고 비판도 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고 대표팀 사령탑이라면 감내해야 한다.
안타까운 건 신 감독이 과연 소신 있게 할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처사가 경솔했는지 건전한 토론조차 할 수 없도록 황폐화 된 생태계다. 그 발언을 밑천 삼아 한 몫 챙겨보려는 언론들, 포털의 행태 때문이다.
해당 잡지의 관계 언론사는 신 감독을 인터뷰한, 1만 자 분량의 일문일답 형태의 원본 기사 중 자극적인 코멘트만 골라 900자 분량의 기사로 만든 뒤 축구대표팀 출정식 행사가 있었던 지난 21일 오전 온라인에 띄웠다. 그리고 포털(네이버)은 이 기사를 노출이 가장 잘 되는 스포츠 섹션 메인 페이지에 배치했다. 신 감독을 인터뷰한 기자와 요약본을 작성한 기자도 다르다.
발췌 기사 하단에 ‘신 감독 인터뷰 전문은 아래 관련기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고 적혀 있었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 어렵사리 전문 기사를 발견해 읽고 나서야 신 감독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부 팬들의 인신공격성 비난, ‘독이 든 성배’라 불리는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질문에 신 감독이 비교적 솔직하게 답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털을 통해 기사를 보는 대부분 독자들은 원문 기사를 10분의 1 분량으로 줄여 만든, 자극적인 내용만 나열한 기사만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기사를 인용해 수많은 언론들이 어뷰징 기사를 쏟아냈다. 앞뒤 맥락과 사정을 살피지 않은 채 해당 발언만 조명되자 신 감독은 불과 반나절도 안 돼 ‘몰지각하고 염치없는 천하의 나쁜 놈’으로 전락해버렸다.
최초 기사를 띄운 해당 언론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슬그머니 발췌 기사 하단에 전문 원본을 실었다. 기사는 읽힐 만큼 다 읽혀 효용가치가 없어진 시점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클릭 수에 목매는 언론, 발췌 기사를 올린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은 뉴스 배급 플랫폼일 뿐’이라며 모른 척 노출시켜 댓글 장사를 하는 포털의 염치없는 공생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