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후투티 번식지로 명성
전국 사진작가들 몰려와 법석
새벽부터 수십 명 “찰칵 찰칵”
“스트레스로 다시 안 올 수도” 우려
경북 경주시 황성공원이 조류 촬영 명소로 부상했지만 일부 사진 동호인들의 극성으로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번식기 촬영을 금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2일 새벽 경북 경주시 황성동 황성공원. 김유신장군 동상 앞 고목나무 아래에 전국에서 몰려온 30여 명의 사진동호인들이 새벽부터 소나무쪽으로 망원렌즈를 겨누고 있었다. 머리 깃털이 인디언 추장처럼 생긴 ‘추장 새’ 후투티의 육추(育雛ㆍ어미새가 먹이를 주는 등 새끼를 키우는 일)활동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벌레를 잡아 온 어미새는 소나무 구멍 안 둥지 속의 새끼에게 먹이를 주려다가 사진 동호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멈칫하며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황성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50~100년생 소나무 등이 우거져 여름철새인 후투티는 물론 쇠딱따구리 등 조류와 다람쥐 담비 등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특히 수년 전부터는 후투티 번식지로 유명해졌다. 후투티는 우리나라 중부 이북 전역에 출몰하지만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다. 황성공원은 도심 속에 있어 무거운 장비를 메고 산길을 걷지 않아도 돼 사진동호인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공원관계자 등에 따르면 황성공원 내 후투티 둥지는 5, 6개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같은 뛰어난 접근성이 서식지 파괴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동호인들은 명당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뜨기 훨씬 전인 오전 4시 이전부터 찾는다. 해 뜰 무렵이면 30~40명에 이르고, 자리 경쟁으로 소란해지기 일쑤다. 일부는 둥지가 있는 소나무에 5~10m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기도 한다.
이에 대해 조류 전문가들은 “후투티 등은 새끼를 키울 때 가장 예민해지고, 지나치게 근접하면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며 “사진을 찍더라도 멀리서 찍어야 하고, 매년 후투티를 보려면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황성춘 경주 버드파크 대표는 “후투티는 둥지 주변이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지면 새끼나 알을 포기할 수도 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황성공원을 다시 찾지 않을 수도 있다”며 “사진 동호인들도 후투티의 멋진 모습을 렌즈에 담는 것도 좋지만, 후투티가 맘 편히 새끼를 키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진정한 새 사랑”이라고 말했다.
김성웅기자 k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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