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차타드ㆍBNP파리바 등
1년새 글로벌 은행 다섯 곳 철수
높은 부실채권 비율도 철수 불러
후진적 운영 탓 은행 불신 여전
거액 횡령ㆍ카드 불법복제 잇달아
한국 은행ㆍ보험 30여개사 진출
지점 늘리고 현지법인화 추진
젊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견고한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베트남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있어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특히 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업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에 진출했던 유럽과 호주, 홍콩 등 외국계 은행이 잇따라 베트남에서의 사업을 축소하거나, 갖고 있던 현지 은행 지분을 매각하는 등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서구 은행 철수 러시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손을 뗀 글로벌 은행은 모두 5개에 이른다. 지난 1월 영국 최대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홍콩법인이 베트남의 상장은행인 아시아상업은행(ACB) 지분 8.75% 전부를 매각했다. 또 같은 시기 프랑스의 BNP 파리바은행도 베트남의 OCB은행 지분 18.68%를 전량 매각, 10년 이상 이어오던 관계를 청산했다. 앞서 작년 9월에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베트남 테크콤뱅크 지분 20%를 처분했는데, 그간 높은 수익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지분 매각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호주계 은행들의 철수도 눈에 띄는데, 커먼웰스(Commonwealth)은행은 2008년부터 운영한 호찌민지점을 베트남국제상업은행(VIB)에 팔아 치웠고 ANZ은행은 소매금융 사업부문을 신한베트남은행에 넘겼다. ANZ는 2016년 9월 기준 290명 직원들이 8개 영업점에서 수신 5억4,700만달러(6,200억원), 여신 1억6,100만달러(1,800억원), 신용카드 회원 9만5,000여명 등 견실한 실적으로 내고 있던 터였다. 신한베트남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융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서구 은행들의 사업 축소, 철수 배경으로는 급격한 금융환경 변화가 우선 거론된다. 베트남 전 금융권에 2020년 ‘바젤 2’(은행자본 건전화방안) 적용을 앞두고 있고, 선진국에서는 은행자본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만큼 각 은행들이 자금 부족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금 증자를 통해 각종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숙제를 세계 모든 은행이 갖고 있다고 본다면 신용등급이 낮은 아시아지역 시장에서의 철수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
이와 함께 높은 부실채권(NPL) 비율도 이들의 철수 배경으로 거론된다. 베트남 국가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베트남 은행의 명목상 부실채권 비율은 2012년 4.2%에서 2016년 2.5%로 소폭 낮아졌다. 하지만 악성 채권까지 포함하면 실제 부실채권율은 9%에 육박한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정부 공식 발표치가 이렇다면 실제로는 더 높을 수 있다. 높은 비율의 부실채권으로 인한 금융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은행들의 철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지 은행들의 후진적 은행 운영에 따른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베트남 수출입은행(Eximbank) 호찌민지점 부점장이 고객 예금 2,450억동(약 110억원)을 횡령, 해외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융권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피해를 본 고객은 해당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업가였는데, 은행 VIP로 대우 받으면서 은행 창구를 찾지 않고 자택에서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은행에 입금해둔 거액 예금이 갑자기 증발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현금인출기에서 간밤에 자신도 몰래 빠져나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는 이용객들의 민원은 은행을 막론하고 제기된다. 현금인출카드가 복제돼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재발방지 차원에서 전국 시중은행들에게 업무 검사와 함께 예금관리 대책 강화를 지시했지만,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베트남에서 사금고의 인기가 시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권 은행은 투자 확대
이런 분위기 속에 아시아권 은행들의 베트남 진출은 러시를 이루고 있다. 2016년 말레이시아의 CIBM과 한국의 우리은행이 법인 설립 인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싱가포르 UOB가 법인 설립에 성공했다. 특히 한국계 금융사들의 진출이 두드러지는데 지난해 말 기준 은행 10개사를 포함, 금융투자회사와 보험사 등 30여개가 베트남에 자리를 잡았다.
베트남 외국계 은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 17일 지점 4개를 추가로 설치해 현지 점포 30개 직원 1,500명 규모로 몸집을 키웠다. 우리은행은 올해 하노이 인근으로 3곳,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남부 빈증, 동남이성, 한인 밀집지 등에 6개의 지점을 추가 개설할 계획이다. 하노이와 호찌민에 지점을 두고 있는 IBK기업은행도 지점 추가 개설을 위해 현지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신동민 신한베트남은행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금융 사고들이 일어나고, 서구은행들이 물러나면서 한국 은행들에게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다”며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기간산업을 외국자본에 맡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사실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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