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난항 불똥, 美中으로 번져
봉합된 무역갈등 ‘ZTE’ 다시 꺼내
회담실패땐 책임론으로 커질 우려
놀란 中, 왕이 외교부장 美에 급파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북한ㆍ미국 간 난기류 불똥이 미중관계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강경자세로 돌아선 배후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노에 놀란 중국은 외교수장을 미국에 급파하는 등 몸을 낮추는 모습이지만 최근 남중국해ㆍ대만 문제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가까스로 타결된 통상 합의마저 흔들리는 등 미중 갈등의 악화가 우려된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이 난항에 빠진 원인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두 번째 시 주석과 만난 다음 태도가 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7~8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을 전격 방문해 시 주석과 2차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김 위원장이 강경모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17일)에서 비슷한 언급한 지 닷새만에 또 다시 시 주석을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거기(랴오닝성 다롄)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어났을 수도 있다”면서 “중요한 건 시 주석과 김 위원장 만남을 몰랐다는 것이고 그 이후 어느 정도 (김 위원장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는 시 주석과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북중 접경지역의 대북제재 완화 지적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시 주석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최근 봉합된 미중 무역갈등의 핵심현안인 중국 통신장비 업체 ZTE 제재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직 합의에 이른 게 아니다”고 못박은 뒤 13억달러(약 1조,110억원)의 벌금과 경영진 교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양국 무역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무역 카드를 언제든 대중 압박용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겉으로는 관영매체를 “북한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건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정책 때문”이라며 반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적극 나섰다.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위해 아르헨티나를 찾은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워싱턴에 급파했다. 왕 부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등을 만날 예정이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체제 전환 문제 등을 협의하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시진핑 배후설’에 대한 해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최근 들어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도발과 한미 합동훈련 동시중단)과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빌미삼아 강경모드로 돌아선 상황을 의식함과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시진핑 배후설이 곧바로 ‘중국 책임론’으로 번질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배후라고 거명하는 건 한반도 비핵화보다 대북 영향력 확보를 우선시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선 당장은 미국과 정면충돌하는 상황은 피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 등을 포함해 비핵화 이후 한반도가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권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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