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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마추어 스타] “방심한 유승민과 맞먹는다고요? 헛소문입니다~”

입력
2018.05.24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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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5년 탁구 취재 서봉국 기자

대학 동아리서 선수처럼 훈련

전국대회 단식 16강 전력

특파원 지낸 탁구 나라 중국서도

‘꽤 잘 치는 친구’로 실력 인정

“생활체육 고수라도 프로엔 안돼

얼마전에도 무참히 깨졌죠”

서봉국 YTN 기자가 서울 은평구 진관동 탁구장에서 호쾌한 드라이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서봉국 YTN 기자가 서울 은평구 진관동 탁구장에서 호쾌한 드라이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땀을 흘리며 탁구를 치는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땀을 흘리며 탁구를 치는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지금은 뜸하지만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기자단 탁구 대회가 열렸다. 거창하게 ‘대회’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탁구인들과 탁구 담당 기자들이 하루 날을 잡아 경기하며 친선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보통 탁구인과 기자가 복식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는데 막상 라켓을 잡으면 승부욕이 발동하는 지라 열기만큼은 꽤 진지했다.

이 중 한 명의 기자는 늘 ‘깍두기’ 신세였다. 탁구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기도 한 YTN 서봉국(49) 기자다. 그가 깍두기인 이유는 간단하다. 워낙 실력이 특출 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은평뉴타운의 한 탁구장에서 만난 서 기자는 “특별히 선수 출신이거나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한 사람 외에 일반 기자들과는 왼손으로 쳐도 진 적이 없다”고 했다. 참고로 서 기자는 오른손잡이다.

그가 기자들 중에서만 ‘군계일학’인 건 아니다. 생활체육 탁구무림에서도 고수급에 속한다. 1991년 미8군 탁구대회 복식 준우승, 1994~95년 부산시 아마추어 대회 2부 단식 준우승, 2000년 전국 언론인 탁구대회 청년부 우승을 비롯해 대학시절 전국 아마추어 대회 단식 16강 등의 커리어를 자랑한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출신인 대한탁구협회 김분식 차장은 “공수에 모두 능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고 아마추어치고 구질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라고 서 기자의 탁구 실력을 평가했다.

서 기자는 중학교 시절인 1985~86년 즈음부터 탁구를 쳤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탁구가 금메달 3개를 휩쓸며 전국에 탁구붐이 일던 시기다. 그 때는 동네마다 탁구장에 사람이 가득했다. 본격적으로 탁구에 빠진 건 198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학교 탁구 동아리에 가입한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2~3시간 훈련, 점심 먹고 오후에 2~3시간 훈련 그리고 저녁 먹고 2~3시간 서브 훈련’이었다고 한다. 전국 대회를 앞두고는 탁구 명문 신진공고를 찾아가 감독에게 부탁해 선수들과 합동훈련을 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어느 대회인가에서 입상을 해 트로피를 들고 집에 들어갔는데 화가 난 아버지가 “네가 도대체 선수냐 학생이냐”며 트로피를 집어 던진 적도 있다고.

1999년 YTN에 입사해 스포츠 기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담당 종목 중 하나로 탁구를 맡았다. 하루라도 라켓을 안 잡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습성을 어쩌지 못해 입사 직후 사내에 탁구 동아리를 결성해 수많은 동료들을 이 세계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도 만나 결혼했다.

중국 베이징 특파원 시절에도 일과 시간을 쪼개 탁구를 즐겼던 서봉국 기자. 1989년 안재형 여자대표팀 감독과 결혼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자오즈민과 찍은 사진도 있다. YTN 서봉국 기자 제공
중국 베이징 특파원 시절에도 일과 시간을 쪼개 탁구를 즐겼던 서봉국 기자. 1989년 안재형 여자대표팀 감독과 결혼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자오즈민과 찍은 사진도 있다. YTN 서봉국 기자 제공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숱한 국제 대회를 취재한 서 기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다. 유승민(36)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중국의 왕하오(35)를 꺾은 뒤 김택수(49) 감독 품에 안기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 기자는 특히 왕하오에게도 ‘연민의 정’을 느꼈다. 왕하오는 10년 가까이 세계 최고수로 군림했지만 올림픽에서는 2004년 결승에서 유승민에게 패한 걸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마 린(38),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장 지커(30) 등 자국 동료에 밀려 3회 연속 은메달에 머문 비운의 스타다. 서 기자는 “사실 나도 멘탈이 약한 편이다. 단체전(5경기 3선승제)의 경우 2대2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뛰어 제 실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쉽게 이겼던 상대도 유독 결승에서 만나면 게임을 망치곤 했다. 왕하오를 보며 ‘너도 나처럼 모질지 못해 그렇구나’라며 혼자 마음속으로 그를 격려했다”고 웃었다.

그는 2013년 3월부터 3년 간 중국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다. 중국에 가서도 가장 먼저 숙소 근처 탁구장을 찾았다. ‘탁구의 나라’ 답게 슬리퍼를 끌고 남루한 차임으로 동네 탁구장에 와 매서운 드라이브를 날리는 ‘선수급 일반인’이 즐비했다. 그들도 서 기자가 탁구장에 나타나면 “한국에서 온 탁구 꽤 잘 치는 친구”라고 반기며 실력을 인정해줬다.

테이블 위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테이블 위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베이징 특파원을 했던 시기만 빼고 15년 가까이 탁구 종목을 취재한 그는 자연스럽게 탁구인들과도 여러 번 겨뤘다. 탁구 기자들 사이에서는 ‘유승민이 서봉국 기자를 만나 방심하다가 큰 코 다쳤다’는 식의 풍문이 돌기도 한다. 실제 그의 실력에 많은 탁구인들이 혀를 내두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 기자는 소문에는 선을 딱 그었다.

“아무리 생활체육 고수라도 프로 선수들에게는 비할 바가 안 되죠. 유승민요? 유승민은요... 뭐랄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이에요 신(웃음).”

그러면서도 그는 “얼마 전 모 탁구인(국가대표 출신)과 오랜만에 쳤는데 무참하게 깨졌다”고 입술을 깨문 뒤 “요즘 너무 운동을 게을리 한 것 같다. 몸을 만들어서 조만간 다시 도전장을 내야겠다”며 라켓을 휘둘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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