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전면 유보됐다. 구조개편의 중축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21일 그 동안 추진해온 모비스 분할ㆍ합병안을 처리할 29일 임시주총을 전격 취소하고, 지배구조 개편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순환출자구조 등을 조속히 개선하라는 정부 압박 속에 연초부터 진행해온 현대차 구조개편은 당분간 공전이 불가피해졌다. 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역시 표류하면서 경영 불확실성도 높아지게 됐다.
이번 분할ㆍ합병안은 모비스의 모듈ㆍAS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함으로써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의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분할ㆍ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됐다며 공격에 나서고, ISS 등 의결권 자문기관들에 이어 모비스 2대 주주(9.8%)인 국민연금까지 반대 분위기로 돌아서면서 난항에 빠졌다. 모비스 주가가 반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인 23만3,429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떨어져 분할ㆍ합병 비용이 급증하게 된 상황도 합병 무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사태는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정부가 주도하는 기업 구조개편의 한계가 드러났다. 취임 이래 시한까지 정해가며 현대차를 압박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현대차의 이번 구조개편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엘리엇 등의 공세로 정작 일이 무산될 지경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요컨대 공정경제를 기업에 촉구하면서도 시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한 셈이다.
우리 기업 경영이 주주자본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현실도 예사롭지 않다. 기업의 장기발전보다 투자자들의 단기 자본이익을 우선하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는 이미 미국 등에서 일반화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에서 일사불란하게 엘리엇 편에 선 외국인 주주들의 행보는 주주자본주의가 국내 기업의 엄연한 경영조건이 됐음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일은 우리 기업이 오너 일가의 ‘독주 경영’ 시대에서 벗어나 더 진전된 합리적 경영모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대차가 이번 일을 ‘쓴 약’으로 소화해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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