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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선도, 담합 불용... 다시 주목받는 '구본무 정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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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선도, 담합 불용... 다시 주목받는 '구본무 정도 경영’

입력
2018.05.21 17:5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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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ㆍ편법 없는 정당한 경영

정직한 보고ㆍ윤리적 조직 등

생전 정도경영 구체적 규정

2003년 대기업 최초 지주사 전환

‘LG식 지배구조’ 193개로 확산

“협력사의 성장은 우리의 성장”

끊임없이 윤리 강조해 와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풍경. LG 제공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풍경. LG 제공

“정말 존경받는 훌륭한 재계의 별이 가셨다.”(문재인 대통령)

“누구에게나 겸손 소탈하셨던 큰 어른. 도덕경영을 실천한 분이다.”(이낙연 국무총리)

“정도경영에 앞장서신 분이다.”(손경식 경총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그가 생전에 실천했던 ‘정도(正道) 경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 총수로서 그 역시 크고 작은 사업 실책과 편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일생에 걸쳐 추구했던 반듯함과 겸손의 자세는, 최근 손가락질을 받는 일부 부유층의 행태와 대비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1995년 취임과 함께 구 회장은 정도경영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주창한다. 그가 설명하는 정도경영은 “꾸준한 혁신으로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 LG만의 행동방식”이었다.

그는 생전 자신의 홈페이지(www.koobonmoo.pe.kr)를 통해 정도경영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경쟁방식에 있어서는 부당ㆍ편법이 없는 정당한 경영 활동으로부터 실력에 기반한 정정당당한 경쟁으로 나아가야 하며 ▦조직운영에서는 정직한 보고ㆍ업무수행 등 윤리적 조직 구축은 물론 공평한 기회 제공, 성과에 따른 공정한 평가ㆍ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경영의 대표사례로 평가받는 것이 국내 대기업그룹 최초의 지주사 체제 전환이다. 2003년 당시 재계 2위 그룹이던 LG는 주력 계열사 간 분할ㆍ합병을 통해 ㈜LG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구 회장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로 한 기업의 어려움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차단하기 위해 1999년부터 준비했다는 게 LG그룹 측의 설명이다.

당시로선 낯설었던 ‘LG식 지배구조’는 15년이 지난 현재 SK, GS, 두산, LS, CJ 등 193개(작년 9월 말 기준) 지주사가 생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빈소를 찾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다른 재벌과 달리 LG는 2003년부터 지주사 체제를 정립하면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구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윤리를 강조한 경영인이기도 했다. 2011년 1월 신임임원과의 대화에서 그는 “이제부터 협력회사와의 ‘갑을 관계’는 없다. 협력사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라고 강조했고, 2012년 2월 신임임원교육에서는 “담합은 사회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도경영을 사업 방식으로 삼는 우리 스스로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20여년간 구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정상국 전 LG전자 부사장은 “1995년 회장 취임 초기, 정도경영 드라이브를 거는 구 회장에게 일선 영업부서에서 ‘다소의 편법은 필요악’이라는 볼멘소리를 하자 ‘당당한 실력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하라’고 호통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대기업 총수로서 구 회장 역시 정경유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차떼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고, 2016, 17년엔 미르ㆍ케이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것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대급부를 요구하지는 않아, 5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사법처리 받지 않은 총수로 남았다.

대기업 회장답지 않은 그의 소탈한 성품 또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날 빈소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4년 전 청와대 외교보좌관 시절 영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구 회장을 회상했다. “구 회장님과 마침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는데, 독서 조명등이 고장 난 것을 보고 ‘저는 자료를 보지 않아도 되지만 보좌관님들은 자료를 보셔야 하니 자리를 바꾸자’고 먼저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요란하지 않은 장례절차는 구 회장의 소탈함을 보여주는 마침표다. 그의 장례는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결정됐다. 재계 총수의 장례가 회사장이 아닌 3일장으로 치러지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LG 관계자는 “22일 오전 최대한 간소하게 발인식을 마친 뒤, 유해는 화장하기로 유족들이 결정했다”며 “수목장(樹木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지만, 장지는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구 회장의 수목장 장소가 생전 즐겨 찾던 경기 곤지암 화담숲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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