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이야기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의 황금 사과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던 세 여신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가운데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미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한 대신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파리스의 이야기. 또 하나는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미국과 프랑스 와인 대결이다. 그 현장을 취재한 주간지 ‘타임’의 기자가 언어 유희로 신화의 저 일화를 갖다 붙인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프랑스 와인의 절대 권력에 대한 신대륙의 도전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가장 강력한도전자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였다. 천혜의 기후와 기업형 와인 숙성 기술의 발전으로 자신감을 획득한 미국 와인업계는 프랑스 와인에 줄기차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비평가와 소믈리에의 호평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물론 프랑스 와인업계로선 그 도전에 응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비공식’적인 블라인드 테스트는 주로 미국 업자들이 주도해 이뤄졌고, 대체로 캘리포니아 와인이 우세했다. 프랑스 업계는 코웃음으로 일관했고, 일부는 유통 과정의 하자와 편파 판정을 시비 삼기도 했다. 제3자인 영국인 와인 유통업자이자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 1941~)가 격식을 갖춰 대회를 연 배경이 그러했다. 그는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대회를 열었고, 저명 비평가와 소믈리에 등 10명의 평가단도 전원 프랑스인으로 선정했다.
결과는, 흑ㆍ백 포도주 모두 미국 포도주의 압승이었다. 공식적으로 프랑스 와인업계는 그 평가도 무시하거나 부정했지만 평가단으로 가담한 이들은 한동안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 주최자인 스퍼리어는 한동안 프랑스 와인 거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양측은 20개월 뒤인 7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대결했으나, 역시 미국 와인이 승리했다. 86년 프랑스요식업협회(FCI)가 주최한 대회에서도, 30주년이던 2006년 대회에서도 미국 와인이 1위를 석권했다.
일련의 이벤트로 프랑스 와인의 명성이 추락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패권적 지위에 치명타를 입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급증했으니, 진정한 승자는 세계 와인업계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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