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얼굴ㆍ주소 등 신상 공개
막상 확인해도 활용할 방법 없어
타인에게 유포하면 징역ㆍ벌금
충남 천안에 사는 임모(32)씨는 최근 성범죄자 정보를 볼 수 있는 ‘성범죄자 알림e’ 앱(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일주일간 사용하다가 회의감이 들어 삭제했다. 주변에 거주하는 성범죄자의 얼굴은 물론 키, 몸무게, 나이, 주소, 상세 범죄 내용까지 알 수 있었지만, 공포심만 커졌을 뿐 당장 임씨가 세울 수 있는 대비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동네에 사는 낯선 성범죄자 얼굴이 자꾸 떠올라 앱에서 안내한 안전 귀가 서비스를 요청하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서비스 불가 지역이었다”며 “이동하는 지역마다 거주 중인 성범죄자 정보 알림이 실시간으로 울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말고 없었다”고 말했다.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2005년. 당시엔 아동 성범죄자 정보를 등록해 관리하고 피해자 등이 제한적으로 열람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고 공개 대상도 성인 성범죄자로까지 확대한 건 8년 전인 2010년 8월이다. 인터넷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서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와 얼굴, 범죄 요지, 거주 중인 건물을 공개하고 있다. 미성년 자녀를 둔 가정은 거주지역 성범죄자의 상세 주소까지 우편 고지해 준다.
그런데 점점 제도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용자가 초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관심이 많이 줄어든 데다 범죄 예방이나 재범률 완화 효과도 낮다는 것이다.
23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 접속건수는 2010년 사이트 개설 직후 505만건에서 2012년 900만건으로 증가했다가 매년 300만건 내외를 기록하며 감소하는 추세다. 모바일 앱 접속건수도 개설 직후인 2014년 267만건을 기록한 후 지난해 105만건으로 60%가량 이용이 줄었다. 사회적 분노가 큰 강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규 이용자가 늘어나는 경향을 감안해도 제도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비율은 낮은 셈이다.
왜 그럴까. 성범죄자 알림e 이용자들의 불만은 “정부가 범죄 사실만 알려 주고 범죄 보호 책임은 개인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로 모아진다. 두 딸을 키우는 김모(42)씨는 “처음 사이트를 봤을 땐 성범죄자의 얼굴까지 알 수 있어 전국에 있는 범죄자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는데, 막상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옆집 사람 얼굴도 잘 모르는데 이 많은 사람 얼굴을 어떻게 외우고 다니겠느냐”고 말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성범죄자 정보를 타인에게 유포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현행법도 알림e 활용범위를 좁게 만든다. 워킹맘 이모(37)씨는 “알림e에 공개된 정보를 아파트에 공개적으로 게시하거나 주변인에게 알려 주의를 주는 것도 범법행위”라며 “결국 개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옆집에 성범죄자가 살아도 모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비스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학생 이모(26)씨는 “앱에서 알려 준 성범죄자 실제 거주지 보기를 눌렀더니 ‘주소가 정확하지 않아 지도 위치를 보여 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럴 거면 정보 제공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범죄 예방ㆍ재범 완화 효과도 낮아
이용자 초기에 비해 1/3로 급감
현재 인터넷에 공개된 성범죄자는 4,088명.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돼 정부기관에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성범죄자 중 법원이 공개명령을 내린 숫자다. 그러나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신상정보 등록 대상인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신상정보 공개명령을 받는 비율은 2011년 76.8%에서 2015년 20.1%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원이 신상정보 등록이 필요하다고 보는 성범죄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현행법상 신상정보 등록 명력을 받은 가해자여도 법원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면 공개를 제외해 주는 등 예외조항이 있어 공개 대상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 연구위원은 “미국은 보안관이 주민설명회를 열어 지역에 사는 성범죄자 정보를 알리고 성폭력 예방교육도 함께 실시한다”며 “정부가 피해자 및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실질적인 제도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신상공개를 통해 재범률을 완화하는 순기능도 강화하려면 경찰의 우범자 관리 조치에 순응하는 성범죄자는 신상등록 기간을 감해 주는 등 공개대상자들의 자발적 동기를 끌어내는 방안을 경찰청과 여가부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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