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식사는 한편의 드라마… 그래서 기록합니다”
맛집 찾아다니며 음식 비평
서울 외식문화엔 “훌륭” 칭찬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
“최근 주목받는 혼밥ㆍ혼술 문화
인간관계 파편화 위기로 느껴져”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현실 버전과 한국 드라마 ‘파스타’(2010)의 자문 요리사가 만났다. 28년째 ‘식사 일기’를 쓰는 시노다 나오키(56)씨와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씨가 그 주인공.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시노다씨는 1990년 8월부터 매일 ‘눈과 혀와 위장의 기억만으로’ 집에 돌아와 외식 일기를 쓰고 그린다. 2012년 50세가 되는 해를 기념해 NHK 방송에 일기장을 투고, 그 사연이 방송에 소개됐고 이듬해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박찬일씨는 외식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다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로 유학,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글이 됐던’ 그는 꾸준히 요리 관련 책을 썼고 드라마 ‘파스타’의 자문도 맡았다. 이탈리아 음식점을 냈던 그가 요즘 꽂힌 음식은 한식. 지난 해 냉면과 돼지국밥을 파는 음식점 ‘광화문 국밥’을 차렸다.
국적도 직업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2013년 일본에서 낸 책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가 한국에 번역된 건 지난해. 고만고만한 주머니 사정에서도 맛난 음식을 먹고자 분투하는 아재의 ‘미식 실록’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모았고, 여세를 몰아 ‘방송 그 후’의 일기를 모은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앨리스 발행)가 최근 출간됐다. 한국 독자를 만나러 온 시노다씨가 찾은 음식점이 바로 박씨의 식당 ‘광화문 국밥’이다. 14일 만난 두 사람은 한일 양국의 미식 문화와 변화상, 상대 국가 외식 문화의 장점을 논했다.
‘대담’ 전 독자들과 박씨가 만든 돼지국밥을 나눠 먹은 시노다씨는 “한국의 샐러리맨은 이렇게 잘 먹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매일 오늘 같은 밥을 먹는다면 서울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 직장인 평균 점심 값이 600~800엔(6,000~8,000원) 선인데 사실 이 가격대 점심이 가장 맛이 없어요. 1,000엔 이상이면 비싸니까 당연히 맛있고, 500엔 이하면 싼 맛에 넘길 수 있거든요. 800엔 선에서 그런 밥맛을 낸다는 점에서 상당히 맛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만족스러운 한식당을 찾기 어려워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받은 음식점은 안 가게 된다”는 시노다씨의 말에 박찬일씨가 손을 번쩍 들며 동의를 표시했다. “소위 미식가라고 하면 프랜차이즈나 값싼 음식점 소개는 없는데 시노다씨 일기에는 롯데리아, 버거킹 얘기가 꽤 나와요. 그야말로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요리를 예로 들면 한국에서 사치하고 싶을 때 사먹는 화려한 음식이란 인식이 강한데, 시노다씨는 1,000엔 대의 실용적인 프랑스 식당을 찾거든요. 진정한 미식가죠.”
시노다씨가 ‘맛집’을 찾는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역과 메뉴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수십장의 관련 사진 중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느껴지는 집을 찍는다고. 물론 실패도 한다. 2005년 모월 모일 일기에 쓴 ‘쓰레기 같은 맛’은 편집자가 출판하면서 디지털로 지웠다. 그는 “식사 일기에는 맛 비평을 쓰는데, 집밥은 식당에서 파는 음식과 맥락이 달라 평가를 할 수 없어 식사 일기에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식당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음미’가 시작된다. 그는 “음식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오늘 일기에 쓸 문장을 생각한다. 음식을 실제로 먹을 때 한 번, 집에 와서 그릇을 떠올리며 그림 그릴 때 또 한번, 음식 평을 쓸 때 또 한번 음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시노다씨가 식사일기를 처음 썼던 1990년, 박씨는 외식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박 씨는 “근 30년간 한국의 외식문화도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우선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져 세계의 많은 전통요리를 점심 메뉴로 고를 수 있다. 혼밥 혼술 문화가 주목 받는데 인간관계가 파편화된다는 사회 위기로 느낀다”고 말했다. 혼밥, 혼술 문화가 일상적인 일본인에게 이런 인상은 어떻게 다가올까. 시노다씨는 “상사랑 먹기 싫은 음식을 같이 먹기보다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낫지 않냐”고 되물으며 “그보다 혼자 먹는 밥의 ‘질’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버블 경제시절 일본도 접대 문화가 생기면서 여러 명이 우르르 밥 먹기도 했죠. 거품 꺼지면서 사라졌는데 일본인이 워낙 혼자 있고, 혼자 음식 즐기는 걸 좋아해요. 그보다 문제는, 제가 식사 일기 쓴 28년 간 일본에 ‘편의점 도시락’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격차가 심해졌는데 이걸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계층이 늘었다는 뜻이죠.” 최근 30년간 양국 음식이 다양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일본 본연의 맛’ ‘한국 본연의 맛’이 줄어들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에게 시노다씨가 특별한 건 ‘옆 나라 일본의 동시대 외식 문화를 개관한’ 일기를 28년간 써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을 처음 찾은 1993년, 일본 현지 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전까지 소설 속 묘사로 일본 음식을 알았죠. 일본 돈가스가 그렇게 두툼하다는 것, 일식에는 찌개가 없다는 것, 라면을 시켜도 단무지를 공짜로 주지 않는다는 것 전부 그때 알았죠. 유명 요리사 중 할아버지가 많은 점, 요리사가 대우 받는 문화, 음식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자세도 신선했고요. 한국 요식업 성장에 일본 영향이 크거든요. 수십 번 일본을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많이 배웠습니다.” 박씨도 최근, 개업 50년 이상 된 한국의 음식점 주인들을 취재한 책 ‘노포의 장사법’(인플루엔셜 발행)을 냈다.
양국의 ‘미식’을 ‘기록’하는 두 사람은 말했다. “인간만이 기록할 수 있으니까요. 한 번의 식사는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같은 음식도 먹는 사람에 따라, 계절에 따라, 먹는 이의 몸 상태에 따라 맛의 기억이 다르죠. 이 음식을 기록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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