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요의 생활의 발견] <4>완벽한 찻주전자를 만나는 일
지난해엔 갑자기 찻주전자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커피를 즐겨 마신 지는 10년이 조금 넘어서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내려 마실 수 있도록 수동 그라인더, 커피 필터, 드립용 주전자, 모카포트 같은 이런저런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를 마실 때엔 머그잔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정갈한 다기에 좋은 차를 대접받고부터는 자그마한 다관(차를 우리는 주전자)으로 향기로운 차를 우려내어 물잔보다 약간 작은 찻잔에 따르고 마시고 했던 그 시간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면 원하는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물건이 나타날 때까지 찾아보고 시간이 들더라도 좀 기다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다기를 찾는 것에 집중했는데 특히나 다관, 즉 찻주전자를 찾는 일에 신경을 쏟았습니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찻주전자는 너무 멋을 내지 않은 듯한 디자인에 광이 나지 않고 매끄러우면서도 고운 흙의 느낌을 가진 것이었는데 그런 모습의 찻주전자는 좀처럼 나타나 주지를 않았습니다. 몇 주간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와 오프라인 매장들을 눈여겨보아도 대부분 너무 작거나 반짝거리거나 몹시 비쌌습니다.
그러다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서울 청담동의 한 찻집이 생각났습니다. ‘찻집’이라고 부르기에는 굉장히 세련된 그곳에서 사용하고 있던 찻주전자, 머릿속에 그려 오던 찻주전자는 바로 그곳의 다관이었나 봅니다. 판매도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한달음에 달려가 사 왔습니다. 비싸다고만 기억했던 가격도 다른 찻주전자를 알아보고 나서 보니 꽤 괜찮은 가격이었습니다.
마치 흙 같은 질감과 모양의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붓습니다. 조그맣던 찻잎이 커다랗게 펼쳐지는 모습을 시간을 들여 지켜봅니다. 이렇게 하루 일과에 ‘차 마시는 시간’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차가 좋은지,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는 미뤄 둔 채 내키는 대로 차를 마십니다. 길 가다가 틴케이스에 든 영국식 차를 사 오기도 하고 마트에서 말린 계피나 우엉을 사다가 우려 마시기도 합니다.
물을 끓이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차와 음악을 정하고 거실에 앉아서 내 기준에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찻주전자에 차를 마시는 저녁의 시간. 일교차가 커서 목 상태가 좋지 않은 요즈음에는 허브티를 만들고 꿀을 한 티스푼씩 넣어 마십니다. 어째 처음 떠올린 사교적인 다도의 시간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더 자주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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