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역별 최소 500만원 최대 1100만원
보조금 많은 곳으로 주소 옮겨 구매
양도 제한 2년 후 웃돈 받고 팔기도
#2
정부 보조금은 에너지 효율 따라
올해부터 최대 500만원 차이도
지원 대상 2만8000대로 확대
#3
차등 보조금에 선호차량 쏠림 현상
정부ㆍ자동차 회사 모두 자충수로
마일리지 후불제 등 개선 서둘러야
충남 당진우체국의 7년 차 집배원 김목호(36)씨는 지난달 정들었던 오토바이와 이별하고 네 바퀴 달린 초소형 전기차를 새 파트너로 맞았다. 매일 아파트 750세대, 일반주택 400세대의 우편물과 택배를 담당하는 김씨는 지붕이 있어 비가 올 때 우비를 입지 않아도 되는 게 안심이다. 무엇보다 집배원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인 미끄럼 사고 우려가 사라졌다. 게다가 아파트는 택배 물량이 많아 우체국을 하루 3, 4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는데 전기차 짐칸 덕에 이젠 한 번에 다 해결돼 30분을 아낄 수 있다. 더울 때는 에어컨을 잠시 틀고 한숨 돌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하루 일을 마치면 차 배터리의 85% 정도를 쓴다. 퇴근할 때 휴대폰 충전하듯 220v 콘센트에 차를 연결해 놓으면 다음날 아침 충전 완료. 김씨의 전기차는 어느덧 동네 명물이 됐다. “비 맞고 눈 맞고 일해야 한다며 걱정하던 어르신들이 이제 그럴 걱정 없으니 다행이라고 하세요. 작은 차가 머냐고 물어보며 기름 안 넣고 전기로만 간다고 하면 신기해들 하죠.” 오토바이 탈 때는 내릴 필요 없었던 주택가 좁은 골목에서 내리고 타고를 반복해 번거롭고, 종종 배터리 충전 상태 점검 때문에 급히 우체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을 빼고는 만족스럽다.
우정사업본부는 친환경 장비를 통해 집배원의 사고를 예방하고 쾌적한 여건에서 현장 업무를 할 수 있게 기존 오토바이(이륜차) 대신 초소형전기차(사륜차)를 도입하기로 하고 현재 전국 7개 우체국에서 11대를 테스트 운영 중이다. 올해 1,000대를 시작으로 앞으로 3년 동안 현재 이륜차 1만5,000대 중 1만대를 초소형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초소형 전기차의 안전 기준을, 환경부가 환경 기준을 만들고 있는데 상반기 중 마무리 될 예정”이라며 “현장 직원들 의견을 반영해 국내외 초소형 전기차 제작 업체들과 집배원 업무에 맞게 수정 보완해서 구매 규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집배원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부터 국내에 1, 2인용 전기차 ‘트위지’를 도입한 르노삼성에 따르면, 치킨(BBQ), 피자(미스터피자), 햄버거(쉐이크쉑) 배달 등에 활발히 쓰이고 있다. 트위지는 지난달까지 1,347대가 팔렸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감안하면 550만~800만원에 살 수 있어 자영업자들은 배달용으로, 직장인들은 도심 출ㆍ퇴근용으로 많이 찾고 있다”며 “특히 올해 지방선거에서 선거 운동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잦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쌩쌩 달리는 전기차, 일등공신은 보조금
전기차는 우리 생활 곳곳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올해 들어 어느새 구매 예약 2만2,000대를 넘어섰고, 2014년 이래 5년 만에 처음 연간 판매량 3만대 시대를 내다보게 됐다.
국내에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건 2014년(판매량 1,075대). 2015년 2,907대, 2016년 5,914대가 팔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1만3,826대가 도로로 쏟아져 들어왔다. 해마다 전년 대비 2배 넘게 팔릴 만큼 빠른 성장세다. 차 종류가 늘면서 선택지가 많아지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특히 지금까지 전기차의 단점으로 꼽혔던 충전 주행거리(100% 충전해 달릴 수 있는 거리)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기존에는 200㎞가 안 됐지만 올해는 400㎞ 이상 달리는 차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서울에서 대전 정도까지 갈 수 있던 게 울산까지 가능해진 셈이다.
더구나 올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현대차 ‘코나EV’, 기아차 ‘니로EV’)가 출시된다. 충전 주행거리가 390㎞에 달하는 두 모델은 이미 각각 1만2,000대, 5,000대가 사전 계약 완료됐다. 한국지엠도 충전 주행거리 383㎞의 쉐보레 ‘볼트EV’ 국내 판매 물량을 지난해 600대에서 올해 5,000대로 대폭 늘렸다. 그동안 국내에 전기차를 선보이지 않았던 브랜드도 올해 한국 시장을 노크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9월 한번 충전으로 500㎞ 이상 달릴 수 있는 SUV 전기차 ‘아이페이스(I-PACE)’를 판매한다. 닛산은 빠르면 연내 주행거리 380㎞(유럽 기준)인 2세대 ‘리프(Leaf)’를 들여올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만 눈에 띄게 한 자충수
전기차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보조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휘발유, 디젤 등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익숙해 있는 운전자들을 전기차로 끌어들이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했다”며 “짧은 시간에 충분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직접 보조금 혜택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마중물로 만족해야 할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나 자동차 회사들의 자충수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업체들이 전기차가 생각보다 싸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소비자는 전기차의 장점을 단지 보조금으로만 인식하게 된다”라며 “보조금 없이는 아예 전기차를 사지 않으려는 풍토가 조성됐다”고 전했다.
올해도 정부가 애초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전기차 구입 보조금 예산을 배정할 때 지원 대상을 2만대까지로 설정했다가 지난달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1,190억원을 추가 투입하며 2만8,000대로 확대했다. 2016년 보조금 대상이었던 1만4,000대보다 6,000대를 늘렸지만 사전 계약된 물량이 예상을 크게 웃돌아서다. 2만2,000대를 넘어서면서 자칫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전기차 구매자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가 말로만 친환경 전기차 보급을 확대한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부랴부랴 추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전기차 보조금에도 퍼 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쉐보레 볼트EV 사전 계약이 1월 접수 개시 3시간 만에 5,000대를 넘었다. 현대차 코나EV도 접수 이틀 동안 1만2,000대가 예약됐다. 2월에 이뤄진 기아차 SUV 니로EV 사전계약에도 5,000명이 몰려 조기 마감됐다.
전기차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어 한정 없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22년까지 ‘전기차 35만대 보급’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금처럼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약 4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미 한국은 미국의 1.6배, 독일ㆍ프랑스의 1.4배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 예산을 통한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보조금 많은 모델로만 쏠리는 부작용
때문에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면 좀 더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엉성하게 보조금 정책을 추진했다가는 도리어 전기차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당장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보조금 차등지급제가 사례다.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침 개정안’을 통해 지난해 모든 전기차에 똑같이 주어졌던 정부 보조금을 에너지 효율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특히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긴 차가 유리해지는 방식이 되면서 결국 배터리가 큰 차를 살수록 받는 보조금이 늘어나게 됐다. 배터리가 작은 기아 ‘레이’(706만원), BMW ‘i3’(807만원), 닛산 ‘리프’(849만원) 등과 비교적 전력저장능력이 좋은 ‘코나EV’, ‘니로EV’, ‘볼트EV’(1,200만원) 등은 약 500만원 차이가 난다.
정부는 보조금을 차별화하면 자동차 회사는 더 성능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 경쟁을 펼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전기차를 사려는 예비 고객들은 ‘코나EV’ ‘볼트EV’ ‘니로EV’로 쏠리고, 반면 다른 전기차는 관심을 덜 받는 ‘부익부 빈익빈’ 상황이 벌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차등 지급은 시장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다음에 썼어야 한다며 정부가 괜찮은 카드를 너무 일찍 꺼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보조금 없이 전기차 시장이 굴러가려면 최소 50만대 규모는 돼야 하고 그때까지는 다양한 차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동등하게 관심받아야 한다”며 “특정 모델들만 주목받으면 시장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대학 입시 계획을 미리 공표하듯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이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게 정부가 최소 2,3년 전에 보조금 지급 정책을 알려야 보조금에만 매달리는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조금 때문에 ‘전기차 위장전입’도 등장
보조금 혜택을 더 받으려고 위장전입하거나 중고차 거래를 위해 타지도 않는 전기차를 대량 구매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어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의 조정이 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KEVUA)에 따르면, 최근 지방자치단체마다 보조금이 다르다 보니 ‘전기차 위장전입’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전기차를 한 번 사서 보조금을 받으면 최소 2년간 해당 지자체가 아닌 다른 지자체의 타인에게 명의를 넘겨줄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 규정의 허점을 노리는 식이다. 예를 들어 올해 전기차 보조금은 서울시는 500만원, 전남은 440만~1,100만원으로 최대 600만원의 차이가 난다. A씨가 전남에서 전기차를 사서 보조금 1,100만원을 받고, 원래 서울에 사는 B씨가 전남으로 주소를 옮겨 A씨로부터 차를 넘겨받은 뒤 다시 주소를 서울로 옮기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보조금이 갈수록 줄어들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일단 신청해 받은 다음 거의 차를 타지 않고 뒀다 양도 제한 기간(2년)이 지난 뒤 웃돈을 얹어 팔려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라며 “사전 예약 인도 순번을 파는 경우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금처럼 전기차를 사는 것만으로 보조금 지원 자격을 주지 말고 실제 차를 운행한 거리를 따져 보조금을 주는 방식(마일리지 후불제)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온다. 박선하 환경부 보급담당 사무관은 최근 전기차사용자협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차량 운행 단계에서 실제 전기차를 이용하는 정도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정책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차 의무판매제’ 도입 검토 목소리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환경부 주최 ‘EV 트렌드 코리아 2018’ 박람회에서 “보조금에 머물지 않고 비재정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자동차 제작사의 자발적이고 책임감 있는 동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의무판매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총 판매 대수 중 일정 비율을 친환경차로 채워야 하고, 규정을 지키지 못할 경우 비율을 초과 달성한 업체로부터 크레딧을 사거나 벌금을 내야 하는 내용이다. 전기차 의무판매제가 시행된다면 자동차 회사들은 일단 전기차를 팔기 위해 가격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업계는 충전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데다 이미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의무판매제는 이중규제라며 부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내연기관 차와 달리 전기차는 배터리가 가격 책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업체가 가격 조정을 할 여지가 크지 않고 배터리 회사들이 가격을 내리도록 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겸임교수는 “미국, 캐나다, 중국 등 전기차 선도국의 전기차 산업 핵심전략은 의무판매제”라며 “미국은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에서 연간 자동차 판매량 4,500대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고 제조사에서 부과하는 의무 사항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2030~2040년 내연기관 모델 판매금지를 선언했듯, 이참에 좀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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