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고통 경험ㆍ병동 신음 탓에
중환자 치료후 증후군 증가세
전담 전문의, 1인당 45병상 달해
인력난 따른 환자 방치 원인 커
“의사 확충 등 환경 투자 시급”
지난 2월 급성 패혈증으로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일반병동으로 옮긴 홍모(65)씨는 중환자실을 ‘지옥’이라 표현한다. 줄로 침대에 묶여 있는 환자, 정신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 누워서 변을 봐야 하는 환자, 의식 없이 기계로 연명하는 환자, 통증을 못 이겨 고래고래 소리치는 환자... 끔찍한 장면을 보며 사투를 벌이다 일반병동으로 내려온 홍씨는 악몽이나 환각에 시달리는 ‘섬망’ 증세와 전신근육이 약해진 ‘중환자실 획득 쇠약’ 증세를 동시에 겪고 있다. 홍씨는 21일 “간호사가 ‘돌볼 환자가 너무 많아 환자분 변까지 봐드릴 수 없으니 그냥 누운 채 해결하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냥 누워서 일을 봐요’라고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상태가 더 나빠져도 중환자실에 보내지 말고 그냥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중환자실을 경험한 뒤 우울증이나 신체ㆍ인지기능 저하 등에 시달리는 ‘중환자 치료 후 증후군(Post Intensive Care Syndrome)’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 대한 고통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환자실의 열악한 환경까지 가세하면서 그 고통이 배가되고 심지어 이후 정신적ㆍ신체적 장애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급성 호흡곤란증후군으로 한 달 넘게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공무원 김모(38)씨는 건강을 회복해 올 3월 직장에 복귀했지만 하루하루가 버겁다. 업무 중 문득문득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을 받을 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밤에 잠을 청하려면 당시 중환자실에서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악령처럼 보여 두려웠던 일이 생각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최근 정신과 상담을 통해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증세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환자실 환자들이 인권조차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이렇게 방치가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인력난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016년 발표한 ‘2014년(1차)중환자실 적정성 평가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1인당 중환자실 평균 병상수는 무려 44.7병상에 달한다. 상급종합병원은 40.4병상, 종합병원은 48.9병상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가 전문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이유다. 정재승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15병상을 넘지 않는다”며 “혼자 여러 병상을 보면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간호인력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행정업무 담당 간호사, 수간호사 등을 제외하고 교대근무를 고려하면 간호사 1명이 평균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패혈증 등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사망하는 일도 잇따른다. 심평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환자실에 입원한 성인 환자 평균 사망률은 16.9%로 상급병원은 14.3%, 종합병원은 17.4%에 달한다.
가장 위독한 환자들이 입원하는 공간인 만큼 가장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지만 지방 종합병원의 환경은 일반 병실보다도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 병원들이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외상센터에서 구사일생으로 환자를 살려도 중환자실에서 관리를 하지 못해 패혈증 등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의사를 떠나 인간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들이 나올 정도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측은 “중환자실에 전담의사라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법 시행규칙엔 ‘중환자실에는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량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중환자실 의료인력 확충은 물론이고 병상 간 간격 유지, 안정적 수면환경 조성 등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 확대가 있어야 중환자실 증후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권역외상센터처럼 정부의 인식개선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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