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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수컷의 멸종’ 부른다

입력
2018.05.19 10: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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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등 성비 불균형 심화

현미경으로 관찰한 거북이의 초기 생식기관 모습. 정자와 난자가 될 세포가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고환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Kdm6b)를 억제(가운데)했더니 거북이의 초기 생식기관이 고환으로 분화(왼쪽)하지 않고 난소로 발달(오른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언스 제공
현미경으로 관찰한 거북이의 초기 생식기관 모습. 정자와 난자가 될 세포가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고환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Kdm6b)를 억제(가운데)했더니 거북이의 초기 생식기관이 고환으로 분화(왼쪽)하지 않고 난소로 발달(오른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언스 제공

2027년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임신할 수 없게 된다. 세계 각지에선 폭동ㆍ테러가 난무한다. ‘불임의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그렇게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을 다룬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년 개봉) 속 세상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파충류들은 이미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암컷과 수컷의 극심한 성비 불균형 때문이다.

호주 북동해안을 따라 발달한 세계 최대 산호초 지역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BR)에 서식하는 푸른바다거북 411마리의 성별을 조사했더니 성장기에 있는 거북의 99.1%, 거의 다 성장한 거북의 99.8%, 성장을 마친 거북의 86.8%가 암컷이었다. 암컷으로 부화하는 일반적인 비율(65~6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GBR은 푸른바다거북의 세계 최대 서식지다. 올해 1월 8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해당 연구결과를 발표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과 호주 퀸즐랜드 해양환경보호청은 “푸른바다거북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극심한 성비 불균형을 불러온 건 다름 아닌 지구온난화다. XㆍY염색체로 성별이 결정되는 포유류와 달리, 파충류는 알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온도에 따라서 성별이 좌우된다. 외부온도가 32도인 곳에서 있다가 부화한 알에선 주로 암컷이, 26도에선 수컷이 태어난다. 푸른바다거북의 성비 불균형은 지구온난화로 알이 부화하는 해변의 모래가 따듯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호주에서 주로 서식하는 턱수염 도마뱀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인류가 감축 노력 없이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 배출할 경우 2081~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이 2.6~4.8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당연히 파충류의 성비 불균형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파충류의 성별이 외부온도에 따라 결정되는 건 생식기관을 발달시키는 유전자(Kdm6b) 와 관련 있다. 미국 듀크대와 중국 저장완리(浙江萬里)대 공동 연구진은 Kdm6b 유전자 발현을 억제했더니 26도의 외부온도에 놓여 있다가 부화한 거북의 80%가 암컷이었다고 지난 1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특정 단백질은 고환 발달을 관장하는 또 다른 유전자(Dmrt1)를 활성화한다. Kdm6b 억제가 Dmrt1의 기능을 막아 낮은 온도에서도 암컷 거북이가 많이 태어난 것이다. 외부온도가 낮을 때는 Kdm6b 유전자가 활성화하고, 온도가 높을 때는 비활성화하면서 거북이의 성별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악어, 턱수염 도마뱀을 포함한 다른 파충류도 비슷한 유전자 작용을 통해 성별이 나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성비 역시 지구온난화의 영향력 아래 있다. 2014년 11월 국제학술지 ‘임신ㆍ불임 저널(Journal Fertility and Sterility)’에 발표된 일본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오를 경우 남성 태아의 사망 비율이 늘어나면서 여성이 더 많이 태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기상청에서 수집된 기온변화 자료와 신생아 출생 정보를 비교 분석한 결과다.

1989년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기록한 폭염으로 2010년 여름, 일본에선 최소 170명이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해 9월 태아 사망이 크게 증가했고, 9개월 뒤인 2011년 6월 태어난 여자 아이 대비 남자 아이의 비율은 1 이하로 떨어졌다. 남성 태아 사망이 증가하면서 여아가 남아보다 많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론 남아가 더 많이 태어난다. 연구진은 “남성 태아가 모체의 고온 등 외부 스트레스에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가 성비 불균형 등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를 몰고 올지 과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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