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 격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재판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적으로 제공한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 재판장으로부터 “말짱 거짓말”이라는 질책을 받았다.
원 전 원장은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 심리로 열린 김 전 기획관의 뇌물 방조 혐의 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임 시절인 2010년 7~8월께 국정원 담당 예산관 최모씨에게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백준에게 2억원을 갖다 줘라’고 지시하고, 이후 김 전 기획관에게 전화해 ‘대통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원해 드리겠다’고 말한 의혹을 받는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 측은 예산과 최모가 원 전 원장 지시로 김 전 기획관에게 2억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대부분 질문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원 전 원장은 “최씨 말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조사 당시 검찰이 기념품 얘길 하길래 시계가 기억이 났다”고 답했다. 기억을 못하고 있다가 검찰 조사에서 ‘기념품’ 얘기가 나와서 청와대로부터 시계 제작과 관련한 돈을 지원 요청 받은 게 기억났다는 취지의 답변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로부터 요청을 받았거나 김 전 기획관과 관련한 통화를 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기억에 없다고 답했다.
30여분 가량 이어진 검찰과 변호인 측 증인신문을 지켜보던 이 부장판사는 직접 “특활비 지원을 요청한 게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느냐? 2억원은 어떻게 정해졌느냐?”고 질문했고, 원 전 원장은 “기억이 안난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는 “말이 안 된다. 청와대에 수시도 아닌 불과 두세번 지원했다면서 어떤 이유로 줬는지 무슨 용처로 줬는지 기억 안 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어 “당시에 민정수석실에서 장진수 주무관이 민간인 사찰을 폭로할 것 같으니까 입막음 목적으로 돈 줘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줬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자신만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에게 준) 5,000만원도 정말 기억 안 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럼에도 “기억이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이 부장판사는 “어떻게 그런 일을 모를 수가 있나, 모른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라며 “이렇게 다른 사건까지 언급하는 건 지금 진술에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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