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유통전문가가 공동 창업
수입업자와 정육ㆍ음식점을 연결
소수 유통업자만 알던 시세를
‘미트박스’에선 주가 보듯 확인
“농수산물로 취급품목 넓혀
글로벌 회사가 되는 게 목표”
복잡하고 불투명한 축산물 유통업계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창업한 지 4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 글로벌네트웍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생산ㆍ수입업체와 소비자를 바로 이어줘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공급자가 독점하던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축산물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미트박스’는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축산물 B2B(기업 간 거래) 직거래 플랫폼이다. 고기를 상자 단위로 구매하는 음식점이나 정육점 자영업자들이 미트박스의 주요 고객들이다. 2014년 축산물 유통 부문 전문가인 김기봉 대표와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서영직 사장이 힘을 모아 이 회사를 설립했다. 서 사장은 “게임회사 웹젠에서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뒤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축산 분야가 여전히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고 낙후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경북대 동기로 오랜 친구이자 축산 분야에서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김 대표에게 제안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서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축산물 유통은 오프라인 위주의 폐쇄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소수의 업계 관계자가 정보를 독식하는 데다 유통 구조도 복잡해서 서 사장 혼자의 힘만으로 접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LG유통(현 GS리테일)과 아워홈의 축산 상품기획자(MD)로 10년 넘게 근무해 축산물 유통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 뿐만 아니라 인맥도 탄탄한 김 대표가 큰 힘이 됐다. 특히 김 대표는 보쌈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고충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몇몇 업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고 가격 거품도 없앨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친하게 지내던 수입업자들을 설득하며 공급 물량을 확보했다. 미트박스를 활용하면 중간상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새로운 고객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류ㆍ마케팅 서비스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류는 오뚜기의 자회사인 물류회사 오뚜기OLS와 협업으로 해결했다. 음식점 자영업자들에겐 중간 마진을 없애 기존 가격보다 20~30%가량 저렴하게 공급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유통업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창업 초기에는 협박 전화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우리가 공개하는 시세가 기준이 되고 업계에서 대세가 되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결국 그게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미트박스를 반신반의하던 수입업자들은 매출과 신규 고객이 느는 것을 확인하며 만족감을 표했다. 자영업자들도 싼값에 양질의 고기를 공급받아 수익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소수의 유통업자가 독점하던 시세를 주식 시황 보듯 매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미트박스에서 거래되는 축산물 가격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입소문을 타자 회사는 급성장했다. 2014년 4,000만원에 불과하던 거래액은 지난해 875억원으로 뛰었다. 미트박스를 이용하는 음식점도 창업 초 50여 곳에서 올 초 1만7,000여 곳으로 늘었다. 현재 자영업자 및 개인 고객 수는 3만여명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벤처캐피털들도 미트박스의 성공을 예견하고 110억원을 투자했다.
두 사람은 직거래 플랫폼 구축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서 사장은 “자영업자들의 구매 패턴 등을 분석해 신용평가의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면 대출받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며 “금융권과 접촉하며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은 무궁무진하다. 블록체인을 통해 축산물 유통 이력을 검증하는 자료로 쓸 수도 있고, 지역별 매출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도 가능하다.
미트박스가 꿈꾸는 미래는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유통 시장을 흔들 수 있는 글로벌 회사가 되는 것이다. 축산물에서 시작해 농산물과 수산물 등 취급 상품을 확대한 뒤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스타트업 회사 하나가 생태계를 바꾸는 건 어렵지만 변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는 있다. 작은 노력이 모이면 시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서 사장) “우리 비즈니스는 한국 시장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김 대표)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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