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로케이션플러스 대표는 항상 나침반을 갖고 다닌다. 그에게 나침반은 요리사의 칼 같은 존재다. 휴대폰으로도 위치 확인이 안 되는 곳이 적지 않아 나침반이 없으면 장소 탐험에 애를 먹기 일쑤다. 워낙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많이 가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김 대표는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나침반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역시 높은 곳에선 휴대폰으로 위치 정보를 정확히 얻을 수 없다.
처음엔 손때 묻은 지도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인터넷이 보급돼 이젠 지도를 내려놨지만, 길을 찾는 그에겐 아날로그적 유물(나침반)이 여전히 디지털 시대를 사는 필수적 도구다. 아이러니다. 공간 탐험가인 그의 사무실 책상엔 박물관에서 볼 법한 큰 나침반이 놓여 있었다. 김 대표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35년을 바다에서 예인선 기관장으로 일했다. 김 대표가 로케이션 매니저로 첫 발을 땠을 때 그의 아버지가 나침반을 줬다. 아버지에게 나침반을 물려 받은 막내아들의 바람은 “누군가에 나침반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생면부지의 장소를 향해 달리다 보면 챙겨야 할 게 많다. 로케이션 매니저는 같은 장소를 낮과 밤에 따로 가봐야 한다. 해가 떴을 때와 졌을 때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밤에 장소 섭외에 나설 때를 대비해 김 대표는 머리에 밴드 형태로 쓰는 형광등을 꼭 챙긴다. 숲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많아 손 보호를 위한 장갑도 필수다. 그의 차엔 드론도 실려 있다. 사진만으론 현장의 느낌을 담기는 부족하다. 길이 끊긴 곳에선 하늘에 드론을 띄어 주변 영상을 찍어 제작진에 보낸다. 휴대용 키보드로 해당 장소의 분위기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카메라는 기본. 킥보드는 김 대표에 ‘제2의 자동차’다. 자동차가 가기 힘든 골목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을 때 없어선 안 된다. 때론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 두고 사진을 찍어야 할 때도 있다. 김 대표의 차 한 쪽엔 형광의 안전조끼도 늘 갖춰져 있다.
김 대표의 배낭엔 중국 유명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의 책 ‘육성으로 듣는 그의 삶, 예술, 세계’가 들어 있었다. 김 대표는 도시설계자이기도 한 아이웨이웨이가 작품으로 예술의 개념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 로케이션 매니저로서의 창작에 대한 갈증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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