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중인 서울공예박물관서
2020년부터 일반에 공개
허동화(92) 한국자수박물관 관장과 치과 의사 박영숙(86) 원장 부부가 평생 모은 유물 약5,000점을 서울시에 기증한다. 시는 이번 기증 유물이 한국의 자수 공예 역사를 심층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17일 시에 따르면 허 관장 부부가 내놓은 유물은 총 5,129점이다. 자수 병풍과 보자기 1,000여점을 비롯한 각종 직물 공예품부터 바늘 같은 침선구까지 다양하다. 국가지정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인 ‘운봉수향낭’ ‘일월수다라니주머니’ ‘오조룡왕비보’ 3건도 포함됐다.
자수사계분경도는 꽃, 나비, 분재 등 사계절의 풍경을 수 놓은 병풍이다. 기법, 구도로 미뤄 고려 말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자수 작품으로는 가장 연대가 오래됐다. 터키 대사 부인이 선점해 외국으로 반출될 상황에 놓인 것을 허 관장 부부가 인사동 고미술상을 설득한 끝에 수집한 일화로 유명하다.
기증된 유물은 모두 옛 풍문여고 자리에 건립 중인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옮겨진다. 2020년 5월부터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허 관장은 평소 자수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부인 박 원장의 영향과 한국 민화 연구자인 조자룡 선생의 조언으로 도자기, 회화 등 일반적인 고미술품이 아닌 자수 병풍, 보자기를 수집하며 소장 분야를 특화했다. ‘보자기 할배’라는 별명도 이 때문에 생겼다.
박 원장도 남편을 도와 자수 유물 수집, 한국자수박물관 설립과 운영에 크게 기여했다. 1997년엔 다듬잇돌과 같은 침선용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자수박물관은 소규모 사립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전 세계 11개국에서 55회의 해외 전시를 개최하며 전통 자수 공예 문화를 알려왔다. 국내 전시까지 포함하면 10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며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현재 노환으로 병상에 있는 허 관장은 “우리 자수가 외국에서 특히 주목 받은 것은 어머니 같은 여성이 꿈과 염원을 담아 수 놓은 유물의 미감이 세계인의 보편적 감수성에 닿아있기 때문”이라며 “이 기증을 계기로 반백 년 감동의 역사가 서울공예박물관을 통해 계승되고 다른 소장가에게 기증 선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시는 전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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