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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천국’서 노래하는 이장희 “30년간 잊었던 음악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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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천국’서 노래하는 이장희 “30년간 잊었던 음악 되찾아”

입력
2018.05.18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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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은 울릉도 풍경에 반해

14년 전 낡은 농가를 고쳐 짓고

아트센터 세워 옛 동료와 공연

찾기 힘든 곳인데도 객석 꽉 차

지인이 오면 텃밭 상추로 대접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게 행복”

가수 이장희는 지난 16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울릉천국 아트센터에서 연 공연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며 “40여 년 전 사랑하던 이를 위해 만든 노래지만, 울릉천국에 오신 모든 분께 제 진정을 담아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가수 이장희는 지난 16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울릉천국 아트센터에서 연 공연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며 “40여 년 전 사랑하던 이를 위해 만든 노래지만, 울릉천국에 오신 모든 분께 제 진정을 담아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제한구역서비스’. 지난 16일 오후 5시 휴대폰에 뜬 문구다. 설마 하고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 불통이다. 통신사의 통신 오류 때문이 아니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북면 평리2길. ‘세시봉’ 가수 이장희(71)의 집을 찾아 ‘울릉천국’이란 문구가 새겨진 큰 돌 왼쪽으로 난 비탈을 따라 올라가니 ‘천국’이 펼쳐졌다. 송곳산 아래 들판(1,652㎡)에선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장희가 사는 '울릉천국' 전경. 여름이 되면 샘터에 수박을 담가놓고, 오두막에 올라 지인들과 같이 먹기도 한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이장희가 사는 '울릉천국' 전경. 여름이 되면 샘터에 수박을 담가놓고, 오두막에 올라 지인들과 같이 먹기도 한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자연 속에 살고 싶던 소년 꿈을 이루다

하늘로 우뚝 솟은 송곳봉과 석봉 아래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허름한 1층짜리 집 앞마당엔 봄 햇살을 머금은 연못이 빛나고 있었다. 이장희가 굴착기 사용법을 배워 직접 판 연못이었다. 초록의 울릉천국에서 탁 트인 하늘 아래 반짝이는 쪽빛 바다를 보니 낮은 탄성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네 시간, 경북 후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두 시간 반, 울릉도 사동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동한 ‘고난의 행군’ 뒤 얻은 절경이었다.

“1996년 울릉도에 처음 왔어요. 배를 타고 도동항으로 들어오는데 양쪽에 절벽이 있었죠. 그 사이로 들어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처럼 신비했다니까요.” 모자를 눌러 쓴 이장희가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 “웰컴 투 울릉도”라고 인사를 건네며 취재진에 들려준 얘기다.

이장희는 2004년부터 울릉도에서 살고 있다. 영화 ‘타잔’을 보며 거대한 자연 속 삶을 꿈꿨던 소년은 꿈을 이뤘다. 이장희는 바다 건너 회색 빌딩 숲에 사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발신지로 울릉도 대신 ‘울릉천국에서 이장희가’를 버릇처럼 썼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둥지를 울릉천국이라 불렀다. 그의 바람은 먼저 떠난 애견 ‘라코’(라디오코리아를 줄인 이름)가 떠난 이 곳에 함께 묻히는 일이다.

이장희가 사는 울릉도의 집. 이장희의 아침은 석봉에 오르는 일로 시작한다. 김이환 울릉도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이장희는 25분 정도의 산책길 중 한 곳을 'LA 로드'라 이름 짓기도 하고, 나무가 꺾여 고개를 숙여 들어가야 하는 곳을 '겸손의 문'이라 지인들에 소개한다. 양승준 기자
이장희가 사는 울릉도의 집. 이장희의 아침은 석봉에 오르는 일로 시작한다. 김이환 울릉도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이장희는 25분 정도의 산책길 중 한 곳을 'LA 로드'라 이름 짓기도 하고, 나무가 꺾여 고개를 숙여 들어가야 하는 곳을 '겸손의 문'이라 지인들에 소개한다. 양승준 기자

울릉도에서 40여 년 만에 밝힌 ‘동방의 빛’

이장희는 울릉천국에 무대도 세웠다. 이달 문을 연 ‘울릉천국 아트센터’다. 경북지사가 이장희에게 문화 센터 건립을 제의, 그가 흔쾌히 자신의 농지 일부(1,150㎡)를 내줘 들어선 공간이었다.

이장희는 지난 6일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외진 곳에서의 공연은 입소문이 난 눈치다. 16일 공연장엔 150석이 꽉 찼다. 일부 관객은 서서 70여 분 동안 그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공연 열기는 뜨거웠다. “마시자~”. 이장희가 노래 ‘한잔의 추억’을 부르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잔의 추억”을 이어 불렀다.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의 히트곡 연주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소규모 공연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1970년대 활동했던 록밴드 동방의 빛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스시스트 조원익이 무대에 올라 합주에 힘을 보탰다. ‘열 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등 CF송을 만든 강근식과, 유재하의 유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제작한 조원익은 당대 손꼽히는 연주자들이었다.

경기 안양에서 울릉천국을 찾은 최원성(66)씨는 “새벽에 일어나 배 타고 고되게 왔는데 자연에서 이장희의 공연을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남편인 최씨와 함께 공연을 본 임모(65)씨는 “유명했던 가수가 자연에 묻혀 산다기에 궁금했다”며 “옛 가수가 자연에서 기운을 받아 노래하고 우리한테 그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장희의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울릉천국엔 꾀꼬리 소리가 공연의 ‘2막’을 열었다. 이장희는 동방의 불빛과 오는 9월15일까지 매주 화, 목, 토요일 오후 5시에 공연한다. 첫 공연엔 후배 가수 이승철도 다녀갔다.

“한 번 뿐인 인생 멋지게”가 좌우명인 이장희는 40여 년 전 함께 했던 밴드 동방의 빛 멤버들과 고희를 넘어서도 다시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한 번 뿐인 인생 멋지게”가 좌우명인 이장희는 40여 년 전 함께 했던 밴드 동방의 빛 멤버들과 고희를 넘어서도 다시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제공

인공 지능 스피커와 동거

‘방랑 가객’은 2004년 미국에서 운영하던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코리아’ 대표를 그만둔 뒤 “하와이에서” 제2의 삶을 살 예정이었다. 하지만 1996년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울릉도를 찾은 뒤 “홀딱 반해” 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울릉도엔 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늘어서 있고 절벽 경관이 유독 많아 제주도와 비교하면 야생성이 더 강하다. 이장희는 당시 “열흘 동안 섬을 걸을 정도로” 섬의 풍경에 빠졌고, 농가를 사기 위해 농협까지 찾아가 현 부지를 추천받았다고 한다. 외양간 등이 붙어 있는 집을 3분의 1 정도 뜯어고쳐 거실과 방 2칸, 부엌과 욕실이 딸린 집으로 바꿨다. 더덕 농사는 3년 만에 포기했다. “허리가 아파서”였다. 요즘엔 텃밭에 상추 등을 기른다. 이장희와 조원익은 지인이 찾아오면 기르던 상추를 따 밥상에 내놓기도 한다. 강근식은 서울과 울릉도를 오가며 공연을 하지만, 이장희와 조원익은 울릉천국에 머물며 무대에 선다.

이장희는 아마존 ‘인공지능 비서(스피커)’인 ‘알렉사’와 함께 산다. 창문을 통해 본 그의 방 책상엔 미국 컴퓨터 제조사 애플의 맥북이 놓여 있었다. 지인들에게 이장희는 ‘얼리 어댑터’로 통한다. “한 번 해보지 뭐”라며 쉼 없이 부딪혀 온 노장은 외딴 섬에서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30여 년 넘게 음악을 잊고 살았어요. 음악이 내 전부이던 시절 음악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공연한 뒤 술 한 잔 기울이는 게 참 좋아요. 이제 저도 칠십이 넘었어요. 인생 마지막에 이렇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하하하.”

울릉도=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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