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팔로 통하는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이 외교ㆍ통상분야 정책 실무를 진두지휘하며 직접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부주석 임명 후 50일 넘게 잠행해오던 그가 실질적인 2인자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시킨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15일 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첫 회의에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요인이 많아지면서 중국의 발전은 기회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면한 위험과 도전에 맞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ㆍ안보 갈등을 적절히 해결해야 하고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정세 급변 상황에서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인민일보의 보도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건 왕 부주석이 중앙외사공작위 위원으로 소개된 대목이다. 이는 지난해 7상8하(七上八下ㆍ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퇴임) 묵계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다가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지도부에 복귀한 왕 부주석의 구체적인 직무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외사공작위는 당과 국무원의 외교안보 업무를 총괄하는 기구로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각각 주임과 부주임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 2기 체제에서 리 총리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왕 부주석이 양제츠(楊潔篪) 중앙외사공작위 판공실 주임을 직접 지휘하며 정책실무를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北京) 외교가에선 최근 구체화하고 있는 중국의 일본ㆍ인도와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왕 부주석의 작품이란 분석이 파다하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2차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왕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류허(劉鶴) 부총리가 미국 측과 개괄적인 합의를 이루면서 미중 양국이 휴지기를 갖고 최종적으로 왕 부주석이 미국으로 건너가 협상을 매듭짓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금융전문가로 미국 경제ㆍ금융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그는 진작부터 무역ㆍ통상분야의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실제 관영 CCTV는 지난 14일 왕 부주석이 미중 양국의 상공업계 대표들을 접견하고 미국 측 대표들과 별도 회견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왕 부주석은 시 주석과 친분이 두텁고 신임도 깊어 지난 5년간 이미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해왔다”면서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뒤 좀처럼 공개활동에 나서지 않던 그를 인민일보가 부각시킨 건 민감한 외교ㆍ통상 현안의 막후 조타수임을 재확인시키고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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