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기타리스트의 애호 기타
자금 압박에 파산보호신청
국내 록페스트벌 5개->1개
팬타포트만 겨우 명맥 이어가
유명 DJ나 래퍼 꿈꾸는 젊은층
EDMㆍ힙합이 대중음악 주류로
기타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전설의 록밴드 비틀스의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While My Guitar Gently Weeps)’다. 흔히 ‘화이트 앨범’이라 불리는 10집 ‘더 비틀스’(1968)에 실린 곡으로, 엇갈린 사랑을 다룬 곡의 제목처럼 조용하게 흐느끼는 블루지(bluesy)한 전자기타 연주가 백미다. 비틀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조지 해리슨(1943~2001)이 작곡해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에릭 클랩턴과 함께 연주해 유명하다. 클랩턴이 노래 ‘레일라’를 만들어 해리슨의 아내(영국 사진작가 패티 보이드)를 유혹해 얄궂은 인연이 됐지만, 두 사람은 ‘절친’이었다. 해리슨은 ‘루시’라 불렀던 자신의 기타(기타 제작사 깁슨사의 레스폴 모델)를 녹음실에서 친구에게 내줬고, 클랩턴은 이 기타로 연주해 녹음을 끝냈다.
이름난 기타엔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기 마련.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비비 킹(1925~2015)이 불이 난 술집에 놓고 온 깁슨 기타 ‘루실’(es-335모델)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들어가 들고 나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눈치챘겠지만 해리슨과 클랩턴, 비비 킹을 관통하는 단어는 깁슨이다.
116년 전통 ‘기타 명가’의 파산보호신청
록밴드 레드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카를로스 산타나 등 세계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사랑한 기타를 만든 ‘기타의 명가’ 깁슨이 최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해 국내외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다.
지난 1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본사를 둔 깁슨의 연간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웃돌지만, 3억7500만 달러(약 4,030억원) 규모의 선순위 담보채권 만기(8월)가 다가오며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이번 여름까지 이 돈을 갚지 못하면 116년 역사를 자랑하는 깁슨은 파산 순서를 밟게 된다. 펜더와 함께 세계 기타 시장을 양분하며 록 음악의 역사와 함께 한 기타 제작사의 추락이다. 1억 달러(약 1,066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펜더도 2012년 이후 매출이 해마다 줄어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코첼라’ 19년 만에 록밴드 헤드라이너 실종
깁슨의 암울한 현실은 음악시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대중음악 시장의 주류는 전자댄스 음악(EDM)과 힙합 음악이다. 1990년대만 해도 주류 장르였던 록 음악은 설 곳을 잃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사흘 동안 열린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엔 록밴드가 단 한 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욘세와 위켄드, 에미넴 등 흑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로만 채워졌다. 1999년부터 시작한 이 페스티벌에 록밴드가 헤드라이너에서 빠지기는 처음이다. “젊은 세대가 (기타 연주 중심이 아닌) 다른 형태의 음악을 원하고 있다”(미국 그래미상 수상자인 재즈 기타리스트 알디 메올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젊은 세대는 ‘기타 영웅’ 대신 유명 DJ나 래퍼를 꿈꾼다. 록 음악 영광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DJ가 대세지만… 전자음악 페스티벌 과열
영미권 록 음악의 침체는 국내에도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 2013년 5개에 달하던 대형 록페스티벌은 올해 1개로 줄었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슈퍼소닉 페스티벌, 현대카드 시티 브레이크,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은 중단되거나 폐지됐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8월 예정)만 살아남아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는 형국이다. 록 페스티벌 시장은 5년 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관객 감소가 가장 큰 이유다.
반대로 전자음악 공연 시장은 활황이다. 3만명 이상을 모을 수 있는 수도권 대형 경기장에서 열릴 전자음악 페스티벌만 해도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26~27일),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6월), 벤츠 스타디움(7월), 스펙트럼 댄스 뮤직페스티벌, ‘월드 클럽 돔(9월) 등 5개 이상이다. 록 음악에서 전자음악 위주로 공연 시장이 확 바뀌었다는 얘기다. “전자음악 페스티벌이 록 페스티벌보다 관객의 진입 장벽이 낮은데다 주류 등 유흥 부가 매출이 커”(공연기획사 관계자 A씨) 전자음악 페스티벌 개최에 눈독을 들이는 공연기획사와, 스폰서를 자처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전자음악 페스티벌이 우후죽순처럼 늘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연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에 거점을 둔 대형 전자음악 페스티벌이 새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운영 문제로 무산됐다. 국내 전자음악 공연 시장 관객은 10~15만명 수준. “국내 시장 규모보다 너무 많은 축제가 생겨 5년 전 록 페스티벌 과열 양상과 부작용을 답습할 수 있다”(음악평론가 김상화)는 지적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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