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축제 기간 주류 불법 판매를 자제해달라는 교육부의 공문이 대학가를 뒤흔들었다. 대학총학생회들은 논의 끝에 잇따라 ‘술 없는 축제’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우회적인 ‘음주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처음으로 주류 판매 없이 축제를 치른 서울 광진구 세종대 캠퍼스의 풍경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점 한구석에 여전히 ‘음주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이 많았다. 주점의 주류 판매가 금지되자 학교 밖에서 술을 구입해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세종대 축제 노점들은 ‘소주 반입 가능’, ‘맥주 반입 가능’ 등의 팻말을 내걸고 술병을 든 행인들을 유혹했다. 노점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는 주류를 판매한다는 문구를 흰 천으로 가린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당초 주류 판매를 계획했다가 정부 당국의 주류 판매 금지 요청에 따라 급하게 바꾼 것이다. 몇몇 노점은 주류 판매 금지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 발표문을 입구에 걸어 놓기도 했다.
대학 축제의 ‘꽃’ 주점이 사라진 이유
지난 1일 국세청은 교육부를 통해 전국 대학에 축제 기간 주류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국세청 허가 없이 축제에서 술을 판매할 경우 현행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리고 협조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현행 주세법령에 따르면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류를 판매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발단은 지난해 인하대의 사례였다. 인하대는 지난해 축제 때 무면허로 주류를 판매했다가 신고를 받은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 됐다. 이를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축제 때마다 관행처럼 무면허로 술이 판매됐지만 이전까지 인하대를 제외하면 행정 지도 대상이 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세청은 올해 본격적인 대학 축제 시즌을 앞두고 교육부를 통해 칼을 빼 들었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간 문제없이 운영되던 행사를 갑자기 걸고 넘어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술이며 안주를 이미 다 준비했는데 축제를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단속에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사전 협의 없이 전달된 공문에 학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 총학생회는 올해 축제에서 주류 판매를 전격 금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주점 없는 축제? 그래도 ‘술 있는 축제’
그러나 공문이 내려온 지 일주일 뒤 찾은 세종대 캠퍼스 축제 현장은 여전히 술병으로 가득했다. 지난 4일 세종대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는 “축제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되 교내 주점을 통한 주류 판매를 금지한다”는 축제 운영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메뉴판에서 ‘술’이라는 글자가 빠졌을 뿐, 각 학과 노점 테이블 위에는 맥주, 소주, 막걸리 등 다양한 술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안주와 술자리만 유료로 제공하고, 주류는 외부 반입을 허용하는 식으로 사실상의 주점을 운영한 학생들의 ‘우회 전략’ 때문이었다. 세종대 12학번 김재현(가명ㆍ26)씨는 “손님들이 직접 술을 사오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점에서는 음식만 만들어서 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캠퍼스 안에서는 ‘소주 반입 환영’, ‘맥주 반입 환영’ 등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손님들을 끌어모았다. 후문 앞에서 영업 중인 마트도 술을 사러 드나드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트 안은 직원들이 주류 상자를 뜯어 술병을 진열하느라 분주했고, 계산대 앞에는 술병을 든 학생들이 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트 사장 이영호(가명ㆍ46)씨는 “박스 채 술을 사 가던 학생들이 혼자 와서 낱개로 술을 사는 바람에 진열에 드는 품이 많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18학번 은대관(21)씨는 “술을 팔면 벌금을 3,000만원이나 낸다는데 누가 직접 술을 팔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교내 어디에도 주류를 판매하는 노점은 없었다. “주류를 판매할 수 없으니 학생들과 외부인의 양해를 부탁 드린다”는 안내문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안주 가격에 술값 끼워 ‘경품’으로... 꼼수 지적도
학생들은 재학생에 한해 술을 무료로 나눠주는 방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 인문대학 노점에서는 학생회비를 납부한 해당 학과 학생들에게 소주 2병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 다른 노점은 특정 안주를 구매한 재학생들에게 무료로 술을 제공했다. 노점 측은 “소주를 학생들에게 단순히 나눠주는 것은 위법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경품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안주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술을 공짜로 제공하기 위해 애초에 안주 값을 높게 책정한다”면서 “술만 팔지 않을 뿐 다른 방법으로 술값을 받아내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당 이벤트를 진행한 노점에서는 음식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보통 3,000원 남짓인 6개짜리 타코야키와 ‘소떡소떡(떡꼬치)’은 이 노점에서 각각 5,000원에 판매됐다.
학생들 “술 싸게 살 수 있어” 반기는 목소리도
축제 첫날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됐지만, 축제를 기획한 학생들은 단 일주일 만에 계획을 수정하느라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식품공학과 주점을 기획한 14학번 학생은 “주류는 이미 주문을 넣어 두었던 상황이었다”며 “일주일 사이 새롭게 노점을 준비하려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주점을 운영한 신현지(23)씨는 “술과 음료수, 물을 모두 주문해 놓았는데 입금 전날 공문을 전달받았다. 500병을 주문했는데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일단 물어줬다”고 답했다. 교육부의 갑작스런 공문 때문에 학생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학내 주류 판매 금지에 일부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15학번 학생은 “교내 주점에서 술을 사는 대신 외부에서 더 싸게 사올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대학 주점들이 책정하는 술값은 일반 매장에서 유통되는 가격보다 500원~1,000원 가량 비싸다. 주류 반입이 금지돼 있던 과거 학내 주점과 달리, 밖에서 술을 사와 싸게 마실 수 있으니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박종훈(가명ㆍ23)씨 역시 “이런 축제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라도 술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12학번 한 학생은 “술을 밖에서 사야 한다면 축제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이대로라면 교내 주점을 운영하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우리 인턴기자
이의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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