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민첩한 이승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이승우 “1분이라도 주어지면 모든 것 걸고 뛴다”
20년 전인 1998년 5월 1일, 대한축구협회는 한 달 뒤 열릴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할 22명의 엔트리를 확정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건 그 해 초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프로축구 포항에 입단한 ‘고졸루키’ 이동국(39ㆍ전북)의 발탁이었다. 그 전까지 A매치 출전 경험이 아예 없던 만 19세에 불과한 이동국을 뽑은 배경에 대해 당시 사령탑 차범근(65) 전 국가대표 감독은 “이동국은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다. 월드컵에 다녀오면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년이 지나 러시아월드컵을 앞둔 신태용호에도 깜짝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이승우(20ㆍ베로나)다.
신태용(49) 축구대표감독이 14일 28명의 소집 명단을 직접 발표할 때 이승우 얼굴이 화면에 뜨자 취재진이 크게 술렁였다. 스페인 명문 클럽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지만 국가대표는 물론 올림픽대표에도 뽑힌 적 없던 그를 선발한 건 파격이다.
물론 이승우의 러시아행을 100% 장담할 수는 없다. 이날 발표한 28명중 5명은 탈락하고 23명만 다음 달 3일 오스트리아 전훈지로 출국한다. 그러나 여러 측면을 고려해볼 때 그가 날개 한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지난 해 20세 이하 월드컵대표팀 감독 당시 이승우를 중용했던 신 감독은 “이승우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만날 스웨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이승우를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뒤로 파고드는 민첩한 동작이나 문전에서 많은 반칙을 얻어낼 수 있는 점 등이 상대를 교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이승우는 볼을 몰고 달릴 수 있는, 현재 한국 선수들 중 보기 드문 스타일”이라며 “후반에 조커로 투입돼 상대에 혼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년 전 차범근호는 본선에서 1무2패로 부진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네덜란드와 2차전 때 크게 뒤지던 후반 막판 교체로 들어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날린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골대 위로 살짝 벗어났지만 팬들에게 한 가닥 위안을 줬다. 이동국은 이후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불혹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뽐내며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됐다. 차 전 감독은 “그 때 이동국을 뽑는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반대를 너무 많이 해 진땀을 흘렸다”고 회상하면서도 이동국의 성장을 보며 지금도 흐뭇해 한다.
축구계는 이번에는 이승우가 신태용호의 히든카드’가 될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승우는 첫 대표팀 발탁 소감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감사하다.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있는 곳이니 형들에게 많이 배우고 발전하겠다. 주어진 시간 경쟁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매 경기 뛰었다. (감독님이)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증명해 보이겠다. 1분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든 것을 걸고 뛰겠다”는 다부진 각오도 잊지 않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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