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시 접수 앞둔 4,5월이면
“맘에 안든다” “단어 명확히 써라”
학부모로부터 정정요청 쏟아져
2013년 6만건→ 2016년 18만건
학종 도입 뒤 수정요구 3배 늘어
“이렇게 생활기록부 고쳐달라는 대로 고쳐주면 우리 교사들 생각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잖아요.“
서울 용산구 A고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김모(32)씨는 최근 학생 생활기록부 문제를 두고 교감 앞에서 얼굴을 붉혀야 했다. 대입 수시전형 원서 접수를 앞둔 4, 5월이 되면 으레 학부모들로부터 생활기록부 수정 민원이 쏟아지곤 하는데, 올해도 역시나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학생 몇몇이 생활기록부 ‘행동 특성’에 기재된 일부 표현을 고쳐달라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는 웬만하면 수정하는 걸 고려해보라”는 교감의 말에 참아 왔던 울분이 터져버렸다는 김씨는 “이럴 거면 차라리 ‘입시맞춤형 생활기록부’를 만드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게 낫지 왜 교사들에게 맡기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교감실을 나와버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 노랫말이 교정을 가득 채워야 할 스승의날(15일), 일선 학교에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민원 창구’ 정도로 전락했다는 교사들 자괴만 가득하다. 학생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스승’의 역할은 고사하고, 입시에 도움될 때만 입시컨설턴트 정도로만 인식되는 현실 앞에 대한 하소연이다.
특히 이맘때 교사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쏟아지는 ‘생활기록부 정정 요청‘이다. 생활기록부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다짜고짜 ‘교사 탓’을 하며 고쳐달라고 하는 건데, 경기 성남시 B고등학교 교사인 박모(38)씨는 “인성에 관해 쓰는 ‘행동 특성’ 항목에 ’수업 참여도가 높음’이라는 표현을 ‘수업 참여에 적극적’이라고 명확하게 고쳐달라는 식”이라고 했다. 수정 요청의 태도도 교사들 입장에서는 서운하기 이를 데 없다. “어감에 차이를 두고 학부모가 마치 학생 앞길 막는 교사처럼 몰아붙이는 때가 많다“는 호소다. 이런 탓에 이미 교육 현장에서는 ‘안 고쳐줬다 괜히 원망사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 하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2014년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된 후 더욱 심해졌다. 현재 상위권 대학 선발 인원 중 절반 정도가 이 전형으로 선발되는데, 생활기록부가 평가의 핵심이라 학생과 학부모 모두 생활기록부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실제 14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수정은 이 전형이 도입되기 전인 2013년 6만7,087건이었다가 2014년 9만6,321건으로 늘었고, 2016년에는 18만2,405건에 달했다. 경북 포항시 C고등학교 교사 강모(41)씨는 “단순 오탈자 수정도 많지만, 학생부종합전형 컨설턴트에게 설명을 듣고 뒤늦게 문제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의 판단과 표현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안중에 없다”고 한탄했다.
수업시간과 진로상담에서도 교사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수업시간에 ‘인터넷 강사 교재’를 버젓이 펴 놓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대학 입시에 도움 되지 않는(?) 내용을 진로상담 중 학생에게 추천했다 학부모들 핀잔을 사기도 한다. 2년 전 서울 한 고등학교에 부임한 백모(29)씨는 “학생이 악기를 다뤄보고 싶어해 ‘기타 동아리를 들어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가 그날 저녁 바로 학부모에게 ‘대학가는 데 필요 없는 활동을 추천하는 교사가 어디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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