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하여 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랐다. 초등학교 교사로 알려진 청원자는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교육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교사들은 개혁의 주체는커녕 늘 개혁의 대상이었다”면서 “모든 교사들이 반대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정부는 말해야 입만 아프고, ‘교사 패싱’은 민주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교원성과급으로 갈등을 유발했고, 문재인 정부는 국가교육회의에 단 한 명의 현장교사 위원도 두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 청원자는 이어 “교권 추락은 수수방관하며 교사 패싱으로 일관하는 분위기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소명의식 투철한 교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며 “유래도 불분명“한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고 했다. 스승의 날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과 함께 가족의 달 5월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도해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정했던 게 5월 5일로 굳어졌고, 어버이날은 미국의 어머니날을 비슷하게 가져왔다. 뒤늦게 정한 성년의 날과 부부의 날도 5월 이미지와 어울린다.
▦ 스승의 날은 1958년부터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병석에 계시거나 퇴직한 선생님을 찾아 뵙던 게 호응을 얻어 1964년 전국으로 확산되며 생겨난 기념일이다. 애초 5월 26일이던 날짜는 이듬해 “민족의 스승”이라는 알쏭달쏭한 이유로 세종대왕 탄신일인 지금의 날짜로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모든 교육 관련 행사를 국민교육헌장 선포일로 통합한다는 비교육적 조치로 10년 가까이 폐지되는 수난도 겪었다.
▦ 스승의 날 폐지 청원은 김영란법에 따라 “스승의 날 학생 대표만 교사에게 꽃을 줄 수 있다”는 국민권익위원장의 말이 도화선이 된 듯하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여러 초등학교에서 “담임에게 꽃이나 선물 금지” “종이접기한 꽃이나 편지도 안 된다”는 안내문을 보냈고, “마음을 담은 아이들 선물까지 거절하는 게 잘 하는 짓이냐”는 교사들의 토로가 적지 않다. 촌지 관행을 부추겨선 안 되지만 너무 엄격한 법 적용은 되짚어 봐야 한다. 교사들이 마음에 입은 상처가 김영란법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며 항의하던 농민만 못하진 않은 것 같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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