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천기 핵무기 러 이관
체제 보장받고 경제지원 얻어내
리비아도 핵물질 등 美로 이관
22개월 만에 핵폐기 완료 선언
미국이 북한 내 핵무기를 해체한 뒤 해외로 이송해 폐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핵시설에 대한 복잡한 사찰과 검증절차가 논의됐던 과거 북핵 협상전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이지만, 과거 이뤄지는 대부분의 성공적 비핵화 사례는 이 과정을 거쳤다.
핵무기를 국외로 반출해 문제를 해결한 대표 사례는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과거 소련에 속했던 3개국의 경우다. 이들 나라는 1991년 소련 붕괴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갑자기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우크라이나의 핵 보유가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핵 포기를 압박했고, 동유럽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핵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한 러시아도 이에 가세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이유로 핵 보유를 반대하는 의견과 주권 국가로서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며 찬성하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가 대규모 경제제재 카드를 들이밀고 군사적 압박까지 가해오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도 군사적 긴장을 높이자 결국 1992년 핵 포기를 선언했다.
우크라이나의 실질적 핵 폐기는 1994년 5월 미국ㆍ영국ㆍ러시아와 다자간 합의를 체결하면서 본격화했다. 앞서 미국은 ‘넌-루가법’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의 핵무기와 핵시설 폐기를 지원할 16억달러 규모 예산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등은 수천 기의 핵탄두와 미사일, 잠수함 등의 핵전력을 러시아로 이관해 폐기했고 대신 체제 보장과 함께 서방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냈다.
22개월만에 핵 폐기를 완료한 리비아 역시 주요 핵시설과 핵물질을 해외로 이관했다.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던 리비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석유수출 규제 등 서방의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이 강화하자 결국 2003년 12월 영국의 중재 하에 핵 포기를 선언한 뒤 곧바로 핵시설을 공개하는 등 구체적인 핵 폐기 절차에 돌입했다.
리비아는 특히 미국 요구에 따라 2004년 중반부터 핵무기 제조장비와 서류 25톤 등을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연구소로 이관했고 이듬해 10월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핵 프로그램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은 리비아의 핵시설ㆍ핵물질 이관이 시작된 후 국교 회복을 위한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석유 수출 규제를 해제하기 시작하는 등 철저히 ‘선(先)폐기 후(後)보상’ 원칙을 관철시켰다.
미국은 북한을 향해 핵무기의 해외 반출을 통한 폐기를 주장하면서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로의 이관을 선택지에 올려두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에 관한 협상이 완료되기 전에 핵 전력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제3국 이전을 주장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북한이 우방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로의 이관을 주장할 경우 북미 간 협의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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