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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ㆍ청결ㆍ친절한 버스, 서비스 정신만으로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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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ㆍ청결ㆍ친절한 버스, 서비스 정신만으로 될까요?”

입력
2018.05.14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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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낸

5년차 시내버스 기사 허혁씨

하루 18시간 운행ㆍ승객 갑질 등

열악한 근로환경 위트있게 서술

“친절은 정신 아닌 몸에서 나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낸 전주 시내버스 기사 허혁. ‘을 중의 을’ 시내버스 기사를 하면서 서비스는 정신에 있는 게 아니라 몸에 있는 것이라 강조한다. 허혁 제공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낸 전주 시내버스 기사 허혁. ‘을 중의 을’ 시내버스 기사를 하면서 서비스는 정신에 있는 게 아니라 몸에 있는 것이라 강조한다. 허혁 제공

“저는 그냥 성실하고 착한, 좋은 버스기사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버스를 몇 년 몰다 보니 그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게 왜 안 되는 것인지, 그 얘길 해드리고 싶었어요. 하하.”

인구 10만 여명의 소도시 패터슨 시에서 시 쓰는 일을 유일한 취미이자 소일거리로 삼은 버스 기사 패터슨을 다룬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 그 영화가 잠시 떠올랐다는 얘기에 당치 않다는 듯 말했다.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패터슨처럼 대답한 적은 있습니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우연히 마주친 관광객이 시인이냐 묻자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 답한다. 자기도 똑 같은 질문에, 똑 같은 대답을 해본 적 있긴 하다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영화 대사처럼 이렇게 정해졌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라고.

지은이 허혁(54)씨는 전주 시내를 누비고 다니는 실제 시내버스 기사다. 시내버스 기사가 되려면 대형 버스 운전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2년간 관광버스를 몰았고, 온갖 승객들의 시비를 다 받아내며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단계, 그러니까 시내버스 기사들 사이에서 ‘이순(耳順)의 경지’라 불리는 3년도 마침내 넘긴, 5년 차 현직 시내버스 기사다.

젊은 시절 큰 빚을 졌다. 빨리 빚 갚으려 장사를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쉬는 날 없이 일해 갚았다. 좋았는데, 스스로가 너무 피폐해졌다. “장사란 게, 내 장사가 되면 굉장히 예민해져요.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고요. 그래서 빚을 다 갚는 순간 이제 끝이다 외친 거죠.”

생계는? 방랑벽, 모험벽에 어울릴 만한 시내버스가 딱 떠오른 대안이었다. “장사할 때보다 벌이는 확 줄고 몸은 고되었지만, 머리는 맑아졌지요.” 머리가 맑아지니 한 때 숨겨뒀었던 ‘문청’ 기질이 슬쩍 새어 나왔다. 운행 중 뭔가 끄적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시내버스 기사의 속사정이나 알리자 싶었는데, 나중엔 이런저런 일상의 풍경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인 버스기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그려낸 영화' 패터슨'.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시인 버스기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그려낸 영화' 패터슨'.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그래서 그의 글은 일상과 노동의 냄새를 풍긴다. 하루 18시간 운행이라는 악마적 노동을 견뎌 내야 한다. 버스 청결이 중요하니까 청소도 수시로 해야 한다. 수시로 하다 보니 주부습진이 닥쳐오지만, 1년 청소 수당은 3만5,000원이다. 폐쇄회로(CC)TV 네 대로 24시간 감시 당하니 이상한 손님에게 잘 못 걸리기라도 하면 냉큼 불려 들어가 경위서도 써야 한다. 그래도 ‘시민의 발’이니까 시민모니터단에게 수시로 친절도를 평가받는다.

허씨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토록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청결, 친절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지. 하지만 버스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더 솔직히 별 반 관심이 없다. 지금 세상은 ‘갑질 파문’이 요란하지만, 그건 중산층들이 감정이입 가능한, 악마화할 대상이 뻔한 사건에만 적용된다. 시내버스 기사란 ‘을 중의 을’일 테고, 알게 모르게 버스 기사에 갑질하는 도시민들은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할 테니까.

그렇다고 주의, 주장이 요란한 각박한 글은 아니다. 허씨 글은 위트가 넘친다. 씨익 웃게 만든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쟁(爭)은 빠르고 인(仁)은 더디다”라고 써뒀다. 그 말에 각주도 하나 굳이 달아뒀다. “버스기사가 볼 적에 화(和)는 관념이다.” 여유를 되돌려 달라는 호소도 있다. “친절한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지만 친절함은 ‘정신’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책을 쓴 건 결국 이 문제 때문이다. 쿨하고 시크한, 관념적이기만 글에 넌더리가 나서다. “책을 읽을 때마다 뭐랄까, 조금 짜증나고 분했어요. 생활이, 생계가 제거된 내용만 담겼거든요. 제 눈엔 그냥 아스피린 같은 책들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가령 이런 문제다. 허씨는 문재인 정부 덕을 좀 봤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서다. 하루 18시간 격일제 근무가 1일 2교대 근무제로 바뀌어서 ‘시범실시’되고 있다.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다 얼마 전 주 52시간제 도입 때문에 경기도에서는 버스기사가 1만명 정도 부족하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버스대란설’이다. 근무형태 변화가 경제에 주름살이 될까. 아니 그게 주름살 취급을 받아야 할까. “현실적 문제가 있겠지요. 하지만 버스 기사도 기계가 아니라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점을 알고 무엇이 가능한지, 그렇지 않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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