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강경화 장관과 회담 후
“김정은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한국과 같은 번영 달성토록 협력”
‘北 핵무기 자발적 국외 반출’ 해석
남북미 지도자간 큰 틀 합의 시사
미국이 ‘경제 지원’이란 당근을 꺼내며 북한에 신속하고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간 북미간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제재 완화 시기와 관련해 북한의 단계적ㆍ동시적 조치 대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가 맞서온 상황에서 북한의 자발적 핵 포기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뜻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회담 직후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9일 방북 당시 “북미 안보 관계의 역사적 큰 변화”를 거론하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회동에서 적대관계 해소와 협력을 강조했던 폼페이오 장관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한 제재 해제 이상의 대규모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 개발을 적극 돕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그간 “비핵화 전까지 최대 압박 작전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만 내놨던 미국이 ‘대규모 경제 지원’ 카드를 꺼내는 것은 북한의 자발적 조치로 비핵화 속도를 견인해 제재 완화 시기를 둘러싼 논란을 타개하려는 성격이 짙다. 전면적 사찰을 통해 비핵화 검증을 완료한 후에 제재를 풀겠다는 미국의 입장대로라면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조속한 비핵화를 원하는 미국 자신의 입장이나 즉각적이고 단계적인 제재 완화를 원하는 북한의 요구와 상충돼 교착 국면이 지속돼 왔다. 북미 양측 모두 조속한 해법을 원하는 만큼 미국이 대규모 경제 지원이란 당근을 내놓고 북한도 선제적인 과감한 자발적 핵 폐기 조치를 내놓아 북미가 접점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거론한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는 리비아 등의 사례처럼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등을 자발적으로 국외로 반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번 방미 기간(11, 12일) 동안 폼페이오 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잇단 회동에서 리비아, 카자흐스탄 등 자발적 핵 포기 모델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북한의 조치가 나오면 미국도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취해 경제 지원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 내 만연한 대북 불신감과 의회 대북 강경파의 견제로 인해 미국이 직접 지원하지 않는 대신 유엔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를 통한 투자와 자금 지원 방식이 거론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트럼프 대통령과 김위원장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에 대해 공통된 이해가 있다고 자신한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 이 과정이 언제 완료될지, 한반도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해 남북미 3국 지도자간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다만 북한의 자발적인 비핵화 조치 수위가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후 비핵화 검증 과정에서 미국의 사찰 요구를 북한이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지도 북미간의 여전한 기싸움 대상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김 위원장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강력한 검증 프로그램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해 사찰과 검증이 남은 협상의 뇌관임을 시사했다.
볼턴 보좌관도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 폐기 문제도 논의될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 수준이 예상보다 높을 것임을 시사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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