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 ‘카스 메가 캔’ 美서 들여와
호가든도 생산 줄이고 수입 대체
국산이 과세 원가산정 불리한 탓
수입은 4캔에 5000원 저가공세도
수입 맥주에 유리한 주세법으로 인해 국산 맥주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국내 맥주 제조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보다 맥주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국산 브랜드 맥주의 역수입 사례까지 나오면서 국내 생산 기반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롯데주류는 11일 기존 수입 맥주 브랜드인 밀러 라이트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에 이어 쿠어스 라이트와 블루문을 수입해 출시한다고 밝혔다. 오비맥주는 국내에서 생산하던 호가든 등 일부 맥주를 수입으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달 카스의 월드컵 패키지 중 740㎖ ‘메가 캔’ 제품을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위스키 업체인 골든블루가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와 독점 유통 계약을 맺고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스페인 필스너 버지미스터를 들여와 500㎖ 4캔을 5,000원에 판매하는 등 수입맥주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맥주를 제조하던 업체들마저 해외 맥주 수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국산 맥주보다 수입 맥주에 유리한 과세 기준 때문이다.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영업비, 제조사 이윤 등이 모두 포함된 제조원가의 72%가 주세로 부과되지만, 수입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이윤 등이 모두 빠진 수입 가격의 72%가 주세로 부과된다. 여기에 맥아 함량이 10% 미만인 발포주나 맥주 원료가 아닌 다른 성분이 첨가된 유사 맥주는 기타주류로 분류돼 72%가 아닌 30%의 주세가 부과된다. 세븐일레븐이 버지미스터 4캔을 5,0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이유다. 버지미스터는 맥아 함량이 일반 수입 맥주와 유사하지만 알긴산이라는 첨가물이 함유돼 있어서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이런 이유로 국내 맥주 업계는 맥아 함량 10% 미만인 발포주를 제외하면 신제품 출시가 거의 중단된 상태다. 국내 맥주 제조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국내 생산기반이 해외로 이전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카스 역수입 사례처럼 해외에서 생산한 뒤 이를 수입하는 방식이 가격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어서다. 국내 맥주 업계 관계자는 “국산 맥주는 모든 제조ㆍ거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 가격을 낮추기 어렵지만 수입 맥주는 수입업체가 정하는 수입가대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어 국산 맥주가 가격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불합리한 주세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내 맥주의 해외 생산이 잇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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