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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속의 여론] 네 명 중 한 명은 소리없는 비명… ‘외로움’ 누가 관리 안 해주나

입력
2018.05.12 17:4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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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또는 항상 외로운 사람

걱정 무력감 짜증 분노가 5배로

젊고 가족 없을수록 외로움 호소

미혼 41% 비해 기혼 18%로 ‘뚝’

#인터넷 동호회 적극적인 사람이

더 외로움 타… 온라인 소통 한계

“정부가 관리해야 하나” 물음엔

찬성 40%ㆍ반대 46%로 비슷해

올 1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 및 시민사회 장관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할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직 임명했다. 외로움 장관 주도로 사회적 고립과 단절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실태 조사와 함께 대처 전략의 수립을 시작했다. 그 결실로 4월 10일에는 외로움에 대한 실태조사(Community Life Survey 2016~2017)를 발표했다. 영국 16세 이상 인구의 5%가 외로움을 ‘항상ㆍ자주(alwaysㆍoften)’ 느끼고 있으며, 16%는 ‘때때로(sometimes)’, 24%가 ‘가끔(occasionally)’느낀다고 답했다. 나머지 55%는 외로움을 ‘거의ㆍ전혀(hardly everㆍnever)’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외로움을 느끼는 빈도/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외로움을 느끼는 빈도/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사회적 고립 급증하는 한국사회

영국의 외로움 장관 임명 소식에 국내 다수 언론은 해외 가십이나 단발성 보도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정부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리서치에서 4월 18~20일 실시한 만 19세 이상 전국 1,000명 웹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의 외로움 문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응답자의 7%가 지난 한달 간 ‘거의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고, 19%는 ‘자주’ 느끼고 있다고 답해, 4명 중 1명은 상시적인 외로움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나머지 51%도 ‘가끔’이지만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부정적 정서 유발ㆍ행복감 잠식하는 외로움

외로움의 폐해는 우선, 개인의 근심 걱정과 사회 병리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피폐화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외로움을 자주 또는 거의 항상 느끼는 사람들은 가끔 느끼거나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걱정’ ‘무력감’ ‘짜증’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 체험이 4, 5배 높게 나타난다. 반대로 외로움은 행복도를 크게 잠식하는 요인이다. 외로움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집단에서는 행복 체감 비율이 68%였지만, 외로움을 가끔 느낀다는 응답자에서는 48%로 차이가 난다.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층에서는 26%, 거의 항상 느낀다는 응답층에서는 18%만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답해 외로움과 행복의 체감도는 반비례 역관계임을 보여 준다. 특히 외로움은 여타의 부정적인 감정들보다도 낮은 행복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행복감과의 상관계수/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행복감과의 상관계수/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젊은 세대, 1인 가구 고독 심각

외로움 체감도에 있어 성별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세대별로는 젊은 세대일수록 외로움을 체감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배우자의 유무, 가족구성은 외로움의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영국 조사결과에서 미혼자, 배우자와 이혼 및 별거, 사별한 사람이 배우자가 있는 사람보다 외로움의 체감 빈도가 높았던 것처럼 이번 조사에서도 미혼자, 사별ㆍ이혼한 사람들이 외로움을 체감하는 비율이 높았다. 미혼자의 41%가 외로움을 빈번하게(항상 11%+자주 30%) 느낀다고 답했지만 사별^이혼자의 경우 35%(항상 14%+자주 21%),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18%(항상 4%+자주 14%)만이 빈번하게 외로움을 느꼈다. 또한 1인 가구 구성원이 외로움을 빈번하게 느끼는 비율이 45%(항상 19%+자주 27%)나 되지만, 2인 가구 이상에서는 21~24% 수준에 그쳤다. 청년층에서 1인 분거가구가 증가하고, 미혼 및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젊은층에서 외로움 문제가 상대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셈이다.

가정 사회관계가 사회적 성공보다 중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외로움은 가정, 친구ㆍ동료와 같은 관계적 요인과 건강 상태, 사회적 성공 여부 등에 영향을 받는다. 가정생활에 불만인 응답층에서는 외로움을 느낀다(항상+자주)는 응답이 47%인 반면, 가정생활에 만족하는 응답층에서는 14%로 낮았다. 친구 동료 관계에 불만인 사람들 중에서 43%, 만족하는 집단에서는 17%가 외로움을 느껴 역시 격차가 컸다. 본인 건강에 불만인 집단에서도 외로움 체감도는 35%, 건강 상태에 만족하는 경우에는 16%였다. 또 사회적 성공 여부에 불만인 집단에서 그 수치는 31%로, 만족인 집단의 13%와 크게 대비된다. 외로움의 극복은 가족 및 사회로부터의 단절에서 탈피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과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얼마나 자주 외로운가/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얼마나 자주 외로운가/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지역 시민단체 네트워킹은 한계가

가족 구성원들 간 소통 빈도가 부족할수록 외로움의 강도는 커진다. 동거하는 가족구성원 간에 대면 대화가 일주일에 한 번 이하인 가정의 39%, 일주일에 2, 3회인 가정의 30%가 외로움의 빈도가 높았다. 하루에 한 번꼴로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가정에서는 외로움 체감 비율이 20%로 크게 낮아진다. 한편, 비동거 가정에서는 주로 전화통화 등을 통해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통화 횟수에 따라 느끼는 외로움 체감도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직접 대면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결과이다.

오프라인에서의 네트워킹도 외로움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취미ㆍ문화 모임이나 종교단체 같은 자발적 네트워크, 동창회 같은 연고 네트워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에 비해 참여도가 낮거나 소속단체가 없는 경우 외로움의 강도가 높아진다. 다만, 마을공동체나 시민단체의 경우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 외로움 체감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아 이들 조직은 사회적 고립 해소에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각종 SNS나 인터넷 동호회 등 온라인 네트워킹이 활성화되고 있으나 온라인 네트워킹에 적극적일수록 외로움 체감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NS나 인터넷 동호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35%가 외로움을 실감한다고 답했지만, 참여하지 않거나 소속 단체가 없다는 층에서는 23~24% 수준에 그쳤다. 온라인 소통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정부의 외로움 대응엔 찬반 엇갈려

영국처럼 외로움 문제를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방안은 어떨까. 한국 응답자의 40%가 한국도 영국처럼 정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46%는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답했다.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정부 차원에서 외로움에 대응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선 것임을 감안하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회적 기반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 못지않은 가족 해체와 사회적 단절이 심화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심각한 고독사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기에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작권 한국일보]한국도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정부가 나서야 할까?/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한국도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정부가 나서야 할까?/ 강준구 기자/2018-05-11(한국일보)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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