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마하티르의 귀환
야권연합 하원 과반 의석 확보
말레이 역사상 첫 정권교체
15년 만에 총리로 화려한 복귀
세계 최고령 수반 기록 세워
1981년부터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한 뒤 2003년 재야로 돌아갔던 마하티르 모하마드(93)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다시 총리에 복귀했다.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려는 말레이시아 유권자의 열망을 바탕으로 9일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장수 총리’ 타이틀 갖고 있던 그는 이제 ‘세계 최고령 수반’ 기록까지 갖게 됐다. 올해 독립 61주년인 말레이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도 이루었다.
10일 더스타, 더선데일리 등 현지 언론은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를 인용, 마하티르 전총리가 지휘한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3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PH와 연대한 지역정당 와리산은 8석을 확보했다. 반면, 집권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은 79석을 얻었다. 5년 전 성적(131석)보다 52석 적다.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같은 이변으로 평가된다. 현지 정치 평론가 하산 자리프는 “정부ㆍ여당이 선거 직전까지 선거구를 여당에 유리하게 획정하고, ‘가짜 뉴스 방지법’을 만들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렸기 때문에 PH의 승리를 점치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생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집 총리를 중심으로 한 현 권력 수뇌부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레포르마시(Reformalsiㆍ개혁) 요구가 확산했고, 이를 간파한 마하티르가 ‘변화’를 외치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나집 총리는 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 조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휘말려있다.
한편 나집 총리 퇴진 운동의 선봉에 섰던 마하티르 전 총리는 이날 새벽 승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정치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우리는 법치를 복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다시 이끌게 될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면서 경제성장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난달 16일 북부 랑카위섬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성장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그에 따른 정치적 안정을 꼽으며 한국을 말레이시아의 모델국가로 꼽은 바 있다.
‘근대화를 이끈 국부(國父)’, ‘개발독재자’란 엇갈린 평가를 받는 마하티르 전 총리를 제외하면 권력을 쥐어본 인사들이 많지 않은 탓에 일부에서는 정권교체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날 말레이시아 상장주식 인덱스에 투자하는 펀드(MSCI 말레이시아 ETF)들은 밤사이 6%대 하락을 기록했다. 고영경 말레이시아 UNITAR 국제대 교수는 “예상을 빗나간 선거 결과인 만큼 충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마하티르가 중국의 대 말레이시아 투자에 비판적인 입장이고,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6% 수준의 재화용역세(GST) 축소 내지는 폐지 의사를 밝힌 만큼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외교가 관계자도 “수권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야권도 속을 들여다 보면 부패가 적지 않을 것이므로 당분간 마찰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이번 선거 결과가 동남아 내에서는 정권 교체 경험이 없는 싱가포르와 캄보디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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