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소 박사야! 숨소리만 들어도 건강상태까지 알 수 있을 걸?”
오형백(44·경위) 대구 달성경찰서 형사는 달성군 현풍 주민들에게는 ‘소 박사’로 통한다. 강력계 형사지만 수의사 못지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숨은 지식이 드러난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달성군의 한 축사에서 소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이후 2달 만에 5마리가 죽었다. 축사 주인은 소음 때문에 소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인근에서 터널을 뚫는 발파작업을 했었다. 해당 건설사는 소음이 공사 시 허용기준을 넘지 않았다며 팽팽히 맞섰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축사 주인은 죽은 소 5마리를 트랙터에 실어 건설사 정문을 막았다.
건설사는 축사 주인을 업무방해죄로 달성경찰서에 고소했다. 소가 죽고 난 후 3개월만이었다.
사건은 달성경찰서 형사1팀 오 형사에게 배당되었고 소 주인을 만나자 소가 죽을 때 설사를 했는지, 죽기 전 전조증상을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수의사를 불렀다. 소가 죽은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설사로 죽었다면 소음과 관련이 없습니다. 소음으로 죽는 소는 증상이 다르거든요”
건설사 측에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황우석 박사가 발표한 논문 속에 젖소의 경우 50데시벨, 한우는 60데시벨 이상이면 생물학적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파고들었다. 소음이 허용 기준을 넘기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던 건설사도 꼬리를 내렸다. 그가 현장에서 소의 생활습관과 특징, 공인된 논문과 사례를 조목조목 들춰내자 팽팽하게 맞서던 양측의 주장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합의점을 찾은 그들은 고소를 취하한다며 3개월간의 막이 내렸다. 오 형사가 현장으로 간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감정의 골이 깊었던 양측도 합의했다. 화가 나 있던 축사 주인도 죽은 소를 실은 트랙터를 2달 만에 빼냈다.
오 형사는 대학교에서 축산학과를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육가공과 식당 운영을 꿈꾸면서 6달 동안 고기 해체 작업도 했다. 뼈와 살을 발라내는 발골까지 해본 그였기에 소에 관한 한 박사급이다.
축산업이 적성에 맞았지만, 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때 반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사고를 당해 3개월간 병원에 누워 있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한해 늦게 갔다. 한 학년을 늦게 갔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공부를 아예 하지 않았다. 대학도 성적에 맞춰 축산과에 진작했다. 졸업 후 축산업에 종사하다 2002년 부모님의 권유로 경찰시험에 응시했다. 그는 “제복을 입으면서 축산 일은 잊었지만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면서 “저의 짧은 지식 덕에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해결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아 법적인 문제로 불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입니다. 법이 개입되는 순간 서로가 피해를 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건이기 때문에 중재했습니다.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고도 원만히 해결되는 것을 보니 경찰로서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는 “경찰 생활 16년 만에 전적이 들통나는 바람에 동료들에게 ‘소 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해 놓으면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와 관련된 사건이 있으면 어디든 지원을 나가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경찰관 한 명이 농민들의 전자제품을 수리하고 농기계를 고쳐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시골경찰 ‘어벤저스’팀을 만들어 농촌을 휘젓고 다니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하하!”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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