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보다 개발비·홍보비 적어
수년 전 단종됐다 다시 출시된 제품들이 식품업계 효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제품은 향수 마케팅에 힘입어 기존 제품을 앞서는 인기를 끌기도 한다.
9일 오리온은 지난달 2년 만에 다시 출시한 ‘태양의 맛 썬’(이하 썬)이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매출로는 18억원에 달하는데 제과업계가 통상 히트상품의 기준으로 삼는 월 매출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썬은 오리온이 1993년 미국 프리토레이와 협력해 만들기 시작한 곡물 스낵으로 2004년 계약 해지로 원래 사용하던 명칭인 ‘썬칩’ 대신 새로운 이름을 쓰고 있다.
썬을 다시 살려낸 건 소비자들이다. 2016년 초 생산공장 화재로 단종된 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게시글이 100건이 넘게 올라오자 오리온은 1년간 생산라인을 구축한 끝에 지난달 재생산에 들어갔다. 오리온 관계자는 “생산 중단 직전 월 평균 판매량보다도 약 20% 더 팔리고 있다”며 “이는 단종 제품 재출시 사례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2003년 잠시 선보였다 단종된 ‘포카칩 알싸한 김맛’을 재출시해 6주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리토레이가 국내 제휴사를 롯데제과로 바꾸면서 사라졌던 스낵인 ‘화이트 치토스’도 최근 재출시됐다. 롯데제과는 화이트 치토스의 맛을 되살린 치토스 콘스프맛을 지난달 다시 내놓았다. 지난해 롯데제과는 10여 년 전 생산이 중단된 스낵 ‘아우터’를 ‘아!그칩’으로 포장과 이름을 바꿔 다시 출시하기도 했다. 두 상품 모두 소비자의 요구가 재출시를 이끌었다.
라면 업계에도 단종 제품 재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농심이 최근 2년여간 내놓은 신제품 중 감자탕면, 카레라이스쌀면,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은 모두 수년 전 단종됐다가 다시 나타난 상품들이다. 팔도가 지난해 선보인 신제품도 10여년 전 단종된 ‘진국설렁탕면’의 업그레이드 상품이었다. 외식업계도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적극적으로 단종 상품을 재출시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지난해 초 판매를 중단한 ‘도이치휠레’를 이달부터 다시 내놓았다.
단종 제품 재출시는 신제품 개발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친근함을 무기로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단종됐다 다시 출시되는 제품 대부분은 소비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이런 제품은 기존 노하우를 토대로 만들기 때문에 신제품 개발보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있고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층에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어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해도 꾸준히 팔리는 제품이 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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