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중인 시리아를 중심으로 중동 곳곳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ㆍ이스라엘의 동서 대결구도가 노골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은 큰 안전핀을 뽑은 격이 됐다. 이란에서 시작되는 연쇄 핵무장 또는 동서 진영간 대규모 전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대 이란의 중동 분쟁 최전선인 시리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은 이날 군부 관계자를 인용해 시리아 방공망이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 근교 키스웨로 날아오는 이스라엘 발(發) 미사일 2기를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소재 시민단체 시리아인권감시단(SOHR)에 따르면 이 미사일 공격은 키스웨에 있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무기고와 로켓 발사대를 목표로 한 공격이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쪽에서도 대 이란 경계령이 내려졌다. 시리아와 인접한 골란 고원 이스라엘 점령지 민간인들이 방공호로 대피했다. 조너선 콘리커스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은 “IDF가 시리아 내 이란인들의 변칙적 행동을 포착했고 골란 고원의 민간인 대피와 방위 시스템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 전력의 전개를 경계하는 발언을 수시로 내놓고 있다. 또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란혁명수비대나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친(親)이란 무장정파 시설을 겨냥해 필요할 때마다 공습이나 포격을 가해 왔다. 이란 역시 “시리아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보복을 다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는 시리아 일대에서 이란의 이스라엘을 향한 도발 명분을 제공해 일촉즉발 상태인 분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스라엘의 진보 성향 일간지 하레츠는 이날 사설을 통해 “이란 합의의 완전한 붕괴는 시리아 지역에서 이란의 도발을 부추겨 이스라엘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우려했다.
미국에 이어 이란마저 핵 합의 탈퇴를 선언해 합의 자체가 무력화할 경우 중동에 연쇄 핵무장과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합의에 남겠다고는 했지만 “수 주 내로 우라늄 농축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 핵무기 개발 재개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지난 3월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우리도 쫓아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8일 “정치적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중동 전역에서 군비 경쟁이란 위험한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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