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9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다. 투자자가 은행의 실명 확인을 받은 가상계좌를 통해서만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이 조치는 정부가 의도한 투기 억제를 넘어 가상화폐 거래소 시장 재편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 계좌를 제공받지 못한 중소 거래소들은 존폐 위기에 몰렸고, 대형 거래소들도 주수입원이던 거래 수수료 급감을 타개하려 다양한 신규사업에 나서고 있다.
9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거래 실명제를 전후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율 조치이지만 실명제 시행을 금융당국의 가상화폐 시장 냉각 의지로 받아들인 은행들이 소수 대형 거래소에만 실명 확인 가상계좌를 내주면서 신규 투자자 진입이 막혔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 금액은 지난 1월 297조원에서 3월 39조원 수준으로 급감했고, 가격 또한 지난 1월7일 개당 2,500만원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달 719만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가상화폐 시장 진출 등 호재에 다소 반등했지만, 이날 현재 1,010만원 선으로 여전히 고점 대비 40% 수준에 불과하다.
연초만 해도 하루 10조원에 달하는 거래가 일어나던 가상화폐 시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국내 거래소 시장은 급격한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은행으로부터 신규 가상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중소 거래소는 투자자 유입이 제한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반면 시장이 호황일 땐 하루 30억원의 수수료를 벌어들이던 대형 거래소들은 그간 축적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빗썸은 가상화폐 결제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월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를 시작으로 숙박예약 애플리케이션(앱) ‘여기어때’, 기업 간 거래(B2B) 전문쇼핑몰 ‘인터파크 비즈마켓’, 결제대행업체 ‘KG이니시스’ 등과 잇따라 결제 제휴를 맺으며 가상화폐 사용처를 늘려가고 있다. 3월엔 전자 지불결제 서비스업체 한국페이즈서비스(3월)와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고 전국 6,000곳 이상 가맹점에 가상화폐 결제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에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결제시스템 'SNS페이'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빗썸은 무인결제단말기(키오스크) 사업에도 진출한 상태다. 빗썸 관계자는 “제휴 기업에서 가상화폐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올 상반기까지 개발할 계획”이라며 “본업은 거래소 운영이지만, 결제시스템 확대가 소비자의 선택의 폭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어 신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블록체인 산업에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투자전담회사 '두나무앤파트너스'를 설립하고 인수합병(M&A)과 지분 확보에 나섰다. 3월엔 게임 특화형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 중인 ‘코드박스’, 블록체인 기반 전자지갑 서비스를 준비 중인 ‘루트원소프트’에 투자했고, 지난달엔 게임업체 ‘넵튠’과 공동으로 100억원을 조성해 블록체인 기술 기반 게임회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송치형 두나무 의장은 “한국은 가상화폐 및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만큼, 사업자 입장에선 블록체인 기반 기술의 메카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코인원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코인원 인도네시아'를 설립, 국내 거래소 최초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3월엔 코스닥 상장 디지털 마케팅 기업 ‘퓨쳐스트림네트웍스’와 태국 현지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 상반기 중 태국 진출도 점쳐진다. 코인원은 해외 간편송금 서비스도 출시할 계획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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