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만이산가족위 박정희 사무국장 인터뷰
은행계좌 개설ㆍ형광등 교체 등
고령 이산가족에 ‘해결사’ 역할도
“이벤트성 상봉은 후유증 불러
중장기적이고 지속적 왕래 필요”
“아버지는 매일 한끼를 북한 함흥식 냉면으로 드셨어요.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셨어요.”
또렷하게 떠올렸다. 40여년이나 흘렀지만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지난 ‘4ㆍ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 가장 먼저 스쳐간 기억은 그랬다. 실향민 2세대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의 안방살림을 도맡고 있는 박정희(55) 사무국장 얘기다.
지난 2일 서울 구기동 통일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박 국장은 최근 무르익은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와 관련, 초등학교 5학년 당시 돌아가신 부친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어느 때 보다 가까워진 남북간 상황에서 실향민 1세인 부친을 일찍 떠나 보낸 자식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였다. 간절함도 내비쳤다. “남북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면서 언론에 ‘종전(終戰)’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이젠 다른 이산가족들의 희망고문도 정말 종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실향민들에게 희망고문 보다 더 큰 상처는 없거든요. 제 아버님도 그랬습니다.”
박 국장은 통일부의 국고 보조금 지원과 함께 1982년 설립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에서 실향민들의 생사 여부와 이산가족 재결합, 2ㆍ3세대 실향민 교육 등의 실무를 맡고 있다.
겨울철 김장이나 은행계좌 개설 등도 ‘척척’…이산가족에겐 ‘만능 해결사’로 불려
사실 각종 세미나 개최나 설ㆍ추석 명절 판문점 망향제 등을 포함한 위원회의 공식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박 국장에겐 가욋일도 적지 않다. “사소하게는 은행계좌 개설부터 형광등 교체는 물론 겨울철 김장과 연탄배달 등으로 도움을 청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이산가족들이 대부분 고령이시다 보니, 번거롭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시거든요.” 그가 이산가족들에게 ‘만능 해결사’로 불리는 이유였다. 급할 땐 결혼 도우미로의 변신도 서슴지 않았다. “4년전 입니다. 탈북한 친구가 30대 후반에 늦게 시집을 가겠다는 데, 막상 결혼식장에 함께 들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긴급구조신호(SOS)를 보내 왔어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수양딸로 삼고 함께 혼례를 올려 줬습니다.” 그는 수양딸이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처럼 이산가족들에겐 후한 점수를 받고 있지만 그는 남편을 비롯해 진짜 가족들에겐 미안한 속마음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위원회 일을 하고 받는 돈은 교통비에 식비 등을 빼면 거의 남는 게 없어요. 처음엔 가족들이 좋아할 리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실향민 2세대인 제 마음을 이해해주고 곁에서 가장 든든하게 응원해 주고 있어요.” 위원회 설립 당시부터 자원봉사자로 실향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탰던 그는 가족들의 이런 후원 덕분에 4년 전부터 상근직으로 매일 아침 7시50분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고 했다.
이산가족 도우미는 ‘숙명’…마지막 이산가족이 남을 때까지 지속
이런 열정 때문일까. 그는 600명이 넘는 위원회 소속 이산가족들에 대한 생활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접할 때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북에 두고 온 딸을 잊지 못하고 집에 소녀상 동상을 세워놓고 매일 물수건으로 닦으면서 눈물로 보내는 90세 이산가족 할머니가 계세요. 이 분에게 남은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박 국장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이산가족의 고령화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최근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접수된 이산가족 생존자 중 70대 이상의 1세대 실향민은 86.3%를 차지했다. 이산가족들의 생존자수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 달 16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주요의제’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1,531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7만3,611명이 사망했다.
박 국장은 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신중함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의 이산가족 상봉은 다음을 기약하기도 어렵고 단기적인 데다, 당첨될 확률도 희박합니다. 이렇게 한번 만나고 오신 분들에게선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요.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후유증으로 한참 동안 말을 못하시는 분들도 봤습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남북간 왕래가 필수적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국장은 끝으로 자신의 소임을 숙명이라고도 했다. “언제가 될 지, 장담할 순 없겠죠. 그래도 이산가족 상봉이 잘되면 실향민들을 모시고 북한 땅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이산가족이 단 1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그들 곁에 있을 겁니다. 그래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 테니까요.” 다부진 그의 목소리에선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