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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햇살, 아련한 구름... 하늘이 내게 말을 건다

입력
2018.05.07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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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나우트 스밀데의 ‘Nimbus’ 시리즈. 구름과 안개를 시적 오브제로서 다뤘다. 디뮤지엄 제공
베른나우트 스밀데의 ‘Nimbus’ 시리즈. 구름과 안개를 시적 오브제로서 다뤘다. 디뮤지엄 제공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D MUSEUM)은 날씨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전시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를 3일부터 열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요소들 - 햇살, 눈, 비, 안개, 뇌우 등 - 을 매개로 작업해 온 국내외 아티스트 26명의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날씨는 그리스 신화의 천둥번개, 19세기 영국 소설 속 폭풍우, 대중가요 가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치며 오랫동안 예술, 문학, 철학, 패션, 디자인 등 삶을 이루는 대부분 영역에서 필연적 원동력이 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총 세 개의 장 ‘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로 나뉘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여섯 가지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수필집처럼 구성됐다.

요시노리 미즈타니의 ‘Yusurika 005’. 디뮤지엄 제공
요시노리 미즈타니의 ‘Yusurika 005’. 디뮤지엄 제공
해변의 풍경을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한 마틴 파의 ‘Lake Garda’. 디뮤지엄 제공
해변의 풍경을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한 마틴 파의 ‘Lake Garda’. 디뮤지엄 제공

첫 번째 장 ‘날씨가 말을 걸다’에서는 일상 속 무심히 지나쳐오던 날씨를 재발견하게 된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관객은 빛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작가 크리스 프레이저의 설치 ‘Revolving Doors’를 체험하며 날씨의 세계로 진입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나른한 햇살 아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아날로그 카메라로 기록하는 마크 보스윅의 작업이 ‘햇살’ 섹션을 열면, 평범한 날들 속 맑은 날들의 기억과 사소한 감정을 포착한 올리비아 비, 해변의 풍경을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다큐멘터리의 거장 마틴 파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궂은 날씨로 인식되는 날씨의 요소들을 서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눈, 비’ 섹션에서는 요시노리 미즈타니가 구현한 여름 날 내리는 포근한 눈과 같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 북극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기록한 예브게니아 아부게바의 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마지막 ‘어둠’ 섹션에서는 사진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마리나 리히터의 작업과 더불어 짙은 어둠과 아련한 밤의 서사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Trees’. 디뮤지엄 제공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Trees’. 디뮤지엄 제공

두 번째 장 ‘날씨와 대화하다’에서는 시각, 촉각, 청각 기반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며 날씨에 관한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하늘의 존재를 문득 깨닫는 순간에서 오는 설렘에 주목한 이은선의 작품을 시작으로, 인공적인 염료나 물질로서의 색이 아닌 자연현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푸르름에 관한 ‘파랑’ 섹션에 도착한다. 인류와 물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살펴보는 무스타파 압둘라지즈의 프로젝트, 특정시간대의 공간과 빛, 그림자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제시하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시리즈는 관객에게 주변 환경에 대한 시지각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구름과 안개의 시각적, 촉각적 감각을 다루는 ‘안개’ 섹션에서는 관객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안개를 경험해 볼 수 있다. 갑웍스의 다채널 영상 설치와 베른나우트 스밀데의 ‘Nimbus’ 시리즈가 시적 오브제로서 구름과 안개를 다룬다. 하늘이 시각, 안개가 촉각을 열어주었다면 ‘빗소리’ 섹션은 청각에 집중한다. 사운드 디렉터 홍초선과 라온 레코드가 채집한 빗소리를 들으며 관객은 30m에 이르는 전시장의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제임스 니잠의 ‘To Sunset’. 디뮤지엄 제공
제임스 니잠의 ‘To Sunset’. 디뮤지엄 제공

세 번째 장 ‘날씨를 기억하다’에서는 에필로그 ‘그곳에 머물렀던 당신의 날씨’를 통해 다섯 작가의 개성에 따라 날씨가 기록되는 방식을 엿보며 각자의 기억 속 날씨가 어떠한 감정과 형태로 자리 잡는지 관찰한다. 주변 사물에 빛, 바람을 투영시켜 풍경을 기록하는 울리히 포글의 설치, 매일 촬영한 사진에 같은 날의 세계적 이슈나 개인적인 사건들을 손글씨로 기록해 병치시키는 야리 실로마키, 화면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중첩시켜 초현실주의적 장면을 연출하는 김강희의 사진을 페이지 넘기듯 이동하며 만날 수 있다. 이어 아날로그 슬라이드 영상으로 채워진 명상적인 공간에서 지나간 햇살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나누는 마크 보스윅의 ‘Abandom Reverie’가 마지막으로 소개된다.

어쩌면 무심코 지나쳤던 매일의 날씨에 대해 작가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각자의 공간을 채운다. 전시는 10월 28일까지 열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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