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낮잠 자는 법안만 23건
사건 잠잠해지면 논의 흐지부지
아동학대ㆍ가정폭력방지법에선
심리상담ㆍ격리조치 등 보호 의무
소년법만 피해자 보호에 뒷짐
소년법 개정 필요성은 흉포화한 청소년 범죄가 알려질 때마다 거듭 제기됐지만, 국민적 공분이 사그라지면 개정 논의도 잦아들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민원이 올해 들어서만 106건 올라왔다. 지난해 9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직후 두 달간 진행된 소년법 폐지 청원에는 29만6,330명이 참여했다.
이를 반영하듯 제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소년법 개정안은 무려 23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국회의 관심은 일시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지난해 9월 1일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 하태경 의원 등이 같은 달 일부개정안 9건을 무더기로 발의했다. 소관 위원회에 접수된 이 법안 중 절차가 진척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전문가들은 “소년법은 일찍이 만들어졌는데 그동안 관심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국선변호사는 “법이 자주 활용되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드러나고 개정돼야 발전하는데 손질이 덜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개정 필요성이 가장 많이 지적되는 건 피해자 보호와 지원 문제다. 대부분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정춘숙 의원 등 12명은 피해자가 신청하면 보호소년의 심리 과정과 처분결과를 통보하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심리개시 여부와 심리 기일ㆍ장소, 심리결과 등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을 피해자 측에 신속하게 통지하자는 취지다. 김삼화 의원 등 10명도 소년범죄 사건의 재범과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년법에 피해자의 정의를 담고, 소년범죄에 대한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등을 신설해 초동수사 단계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소년법과 별개로 ‘피해자 보호법’을 따로 만드는 게 소년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타당한 방향이라고 지적한다. 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의 영향을 성인이 된 뒤 받지 않게 하려는 소년법에 피해자 내용을 담는 것은 소년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과정에 피해자가 개입하면 심리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으로 활동하는 한민희 변호사는 “처음에는 ‘피해자도 허가를 받고 재판에 들어가야 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소년법의 목적 자체가 비행을 저지른 소년에게 불이익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위한 법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정법원이 다루는 형사사건 중 유일하게 피해자 보호에 관한 대응 법률이 없다는 비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방법원 형사재판부가 아닌 가정법원에서 다루는 형사사건은 아동보호ㆍ가정보호ㆍ소년보호 사건 3가지다. 소년보호 사건을 제외한 다른 보호사건들은 가해자 처벌에 관한 법률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절차를 두고 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에 관한 내용은 물론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역시 그에 대응하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정폭력방지법)’을 두고 있다. 유일하게 소년법만 보호소년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소년을 지원하는 법률을 두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입법미비다.
가정폭력방지법은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머물 수 있도록 시설을 제공하거나 임대주택 우선 입주권을 부여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무를 부과한다. 그곳에서 심리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또 피해자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ㆍ지원체계를 구축하고 피해아동을 가해자와 분리하기 위해 주소지 외 지역에서 취학을 지원하는 조항도 두고 있다. 아동학대처벌법도 아동학대행위자를 피해아동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피해아동을 보호시설로 보내거나 긴급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년보호사건 피해자에게도 필요한 조치들이다.
이와 함께 소년부 심리 도중 사안이 중하면 형사재판부로 되돌려 보내는 근거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호소년이 형사재판에 보내졌을 때 재판부가 ‘소년보호사건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한번 소년부로 이송되면 다시 형사재판부로 보낼 수 없다. 법원 관계자는 “소년부에서 형사재판부로 다시 이송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민희 변호사는 “보호소년을 다시 형사재판부로 보내면 당사자에게는 형사처벌이라는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거가 필요하다”며 “앞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피고인에게 불리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어서 돌려보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소년법은 1958년 제정된 이후 63년, 77년, 88년에 일부 개정됐다. 2007년에 대폭 개정됐고 이후 일부 개정됐다. 현실에 맞지 않은 부분을 손질해야 할 시점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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