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이후 깜짝 행보로 해빙 무드 주도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 노선 이을지 주목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담판이 분수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파격 변신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핵ㆍ미사일 실험에 몰두하다 지난해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계기로 도발을 중지한 뒤 올해 들어서는 중국 깜짝 방문과 판문점 선언으로 해빙 무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 세계인들은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적 만남에서 어떤 깜짝 이벤트를 벌일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워싱턴과 평양은 또 한번의 화끈한 소식을 기대해도 좋은 분위기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치 않는 낙관론자들은 북미 핵 담판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협정이 교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북한이 핵 카드와 경제개발을 맞바꿀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핵ㆍ경제 병진 노선 대신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채택한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역사적 터닝포인트라는 것이다. 북한이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도 경제발전 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처한 상황이나 움직임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다. ‘장마당’과 신흥 자본가라는 ‘돈주’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외부 세계에서 유입되는 정보가 넘쳐나는 바람에 북한은 국가 통제를 강도높게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까지 가세한 대북 제재는 김정은의 통치자금마저 더욱 옥죄고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고립주의를 유지하느냐, 개혁ㆍ개방으로 방향을 트느냐를 놓고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 됐다.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개방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로 평가받는 김정은의 캐릭터 또한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인도하는 동력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인 박정현 박사는 ‘김정은의 교육’이라는 글에서 그를 “공격적이지만 자멸적이지 않고 도리어 이성적이다” “이념 대결의 시대 혁명전사였던 할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맘껏 즐기면서도 현대적인 지도자로 보이려고 애쓴다”고 분석했다. 실제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이끌고 환영 만찬에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는 모습으로 정상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김정은을 “솔직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이 중국을 개혁ㆍ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노선을 추종하는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지난달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에게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핵ㆍ경제 병진노선의 완성을 선언한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는 1978년 덩샤오핑 노선을 채택한 중국 공산당의 11차 3중전회에 비유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석과 추론은 낙관론에 기댄 결과다. 선대(先代)가 위기 국면에서 개혁ㆍ개방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결국 주체국가로 회귀했던 경험에 비춰 볼 때 김정은 또한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반론도 상당하다. 김일성은 1984년 선전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김정일은 2001년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개벽’을 언급하면서 개혁ㆍ개방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끝내 문을 열지는 않았다. 김정은 역시 비핵화에 대한 보상에 실망한 나머지 선대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정은이 고립주의에서 탈피해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이끈다면 ‘북한의 덩샤오핑’으로 추앙받을 수 있다. 반면 선대의 길을 따라간다면 주체사상의 독재국가 지도자로 살아야 한다. 그의 역사적 선택은 조만간 북미 정상회담에서 판가름이 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담판에 성공한다면 국제사회는 그의 진정성을 믿고 북한의 경제개발을 적극 지원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김정은은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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