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국 유일 옻산업특구
가공 상품 개발,문화단지 조성
5월 축제때면 발 디딜 틈 없어
비누 쌀통 등 수십가지 가공품
탕수육 튀김 등 음식도 인기
가공 원료만 하루 4톤 생산
배움터, 생태체험장과 연계
관광 어우러진 문화단지 조성
대단위 자연휴양시설 박차
충북 옥천에서 5월 7일은 ‘옻의 날’이다. 옥천군은 지난해 이 날을 옻의 날로 지정, 선포했다. 명칭은 옻칠(5·7) 발음에서 따왔다. 옥천군이 옻의 날을 선포하고 기념식까지 거행한 것은 옻의 본고장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예로부터 옥천은 옻으로 유명했다. 옥천 공납품으로 건칠(옻나무 진을 말려 만든 약재)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전한다. 지금도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옻샘이 남아 있고, 인근 안남면 지수리에는 수령이 300년 가까운 옻나무가 살아 있다. 칠방리 등 옻과 관련된 지명도 곳곳에 널려 있다.
옥천은 옻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자연 환경을 갖췄다. 옻나무는 공기 중 습도가 높고 토질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금강 상류에 자리해 안개가 자주 끼고 토양이 비옥한 옥천은 이런 조건에 딱 맞는 지역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옥천엔 옻나무 군락이 지천이었고, 옻 품질도 옥천 산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시대 질 좋은 한국산 옻을 탐한 일제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전국의 옻 산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 때 옥천지역 옻나무 군락지도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옻의 고장이란 명성도 퇴색해버렸다.
옥천이 다시 옻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옥천군이 전국 유일의 옻산업특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간단한 약재나 칠 재료 정도로만 쓰였던 옻은 1990년대 들어 독성을 완전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항산화·항암 성분이 다량 함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계에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갖가지 생활용품부터 공산품, 기능성 식품, 의약품까지 활용 가능한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간파한 옥천군은 옻의 본고장이란 옛 명성을 되살리고 새로운 소득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옻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옻산업특구로 지정된 이후엔 옻 가공상품을 개발하고 옻문화단지를 조성하는 등 옻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옥천군 옥천상계공원에 차린 제11회 옥천참옻축제장 입구에 다다르자 ‘옻 오르는 분, 출입을 통제합니다’란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운영본부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보건소 직원이 두드러기를 억제하는 항히스타민제를 입장객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옻에는 ‘우루시올’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이 물질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옻과 접촉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예민한 사람은 옻나무를 삶을 때 나오는 김만 쏘여도 두드러기가 날 정도다. 하지만 옻순은 맛이 일품이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 때문에 ‘봄나물의 제왕’으로 불린다.
축제장에선 옻순 판매코너가 단연 최고 인기였다. 청주에서 왔다는 김종환(65)씨는 “봄철 이맘때 면 옻순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곳을 찾는다”며 “맛도 좋고 시중보다 가격도 저렴해 올 때마다 몇 상자씩 구입해 간다”고 말했다.
음식코너에는 제철 옻순을 이용해 만든 음식을 맛보려는 마니아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옻수육 옻물밥 옻순비빔밤 옻순탕수육 옻튀김 옻순닭고기두루치기 옻순장아찌 옻순된장무침 등 다채롭게 변신한 옻순 음식이 10여 가지에 달했다.
이 축제는 옥천군이 옥천 참옻을 홍보하기 위해 2008년부터 매년 옻순 철인 5월초쯤 열고 있는 행사다. 올해는 옻순 출하시기가 빨라져 1주일 정도 행사를 앞당겼다.
축제 때마다 금강과 대청호 주변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신선한 옻순이 나오는데, 이번엔 단 사흘 동안 5,000㎏이 넘는 옻순이 팔려나갔다.
옥천군이 옻을 특화작목으로 키우게 된 데는 옻산업특구 지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5년 12월 동이면 청성면 등 옥천군내 6개 읍·면 79.4㏊(1㏊=1만㎡)가 옻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옻산업 육성팀을 꾸린 옥천군은 먼저 이곳에 본격적으로 옻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농가들을 독려했고, 옥천군산림조합과 업무 협약을 해 옻 식재 면적을 넓혀갔다. 지금까지 145개 농가가 68㏊에 약 15만 그루를, 군과 군산림조합이 120㏊에 26만 5,000그루를 심었다. 현재 특구 내 옻나무 단지는 총 188㏊, 수량은 41만 5,000그루에 이른다.
옻 농가들은 점차 전업농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텃밭 등에 수십~수백 그루 정도만 심던 농가들은 이제 묵힌 농지나 산기슭 등에 수천~1만 그루씩 대규모로 심고 있다.
옥천군은 앞으로 100만 그루까지 옻나무를 늘릴 계획이다. 그렇다고 나무 수량만 늘리는데 급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군은 우량 옻나무 품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품질이 우수한 신품종을 개발하고 이원면 묘목특구내 전문가들과 협력해 우량 옻나무 묘목을 대량 생산해 농가에 보급할 참이다.
지역 농가와 기업들은 옻을 활용한 건강 기능식품, 의약품, 각종 가공식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강참옻영농조합법인, ㈜오향, ㈜케이웰바이오신약, 옥천참옻영농조합법인, ㈜국향주조 등이 옻비누 옻화장품 옻된장 옻간장 옻식초 옻술 옻꿀 옻쌀통 등 수십 가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옥천군은 이들 영농조합과 업체에 옻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33억원을 들여 2016년 말 옥천읍 매화리에 옥천특화작목가공센터를 건립했다. HACCP, GMP 인증을 받아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동에 들어간 이 가공센터는 추출기 농축기 세척기 등을 갖추고 옻물과 옻가루 등 가공품 원료를 하루 4톤씩 생산하고 있다.
김인하 케이웰바이오신약㈜ 대표는 “옻 농도와 유효성분 함유량이 일정한 규격화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 가공 업자들도 안심하고 제품 개발과 생산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옥천군은 체험과 교육, 관광이 어우러진 옻문화단지도 만들고 있다.
옻나무가 빼곡한 동이면 조령리 일대 군유림에 1차로 54억원을 들여 옻배움터와 옻생태체험장을 조성해 2015년 개장했다. 현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옻배움터에서는 옻순 채취법을 익히고 옻칠공예, 옻발효음식 만들기, 옻비누 만들기, 옻물들이기 등 다양한 옻 체험을 할 수 있다. 옻생태체험장에는 10만 그루의 옻나무 속에 탐방로(5㎞), 레저스포츠길(9㎞)이 있어 옻 생태를 체험하면서 산책·레저를 즐길 수 있다.
이 단지는 힐링을 주제로 한 대단위 휴양시설로 거듭날 예정이다. 군은 추가로 40억원을 투자해 친환경글램핑장, 오토캠핑장, 어린이놀이시설, 숲속의 집 등을 설치하고 자연휴양림을 조성키로 했다. 2020년까지 이 사업을 마무리짓기 위해 현재 사업성 검토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군은 이 옻문화단지가 옻나무 생산부터 가공품 제조, 교육과 관광, 치유를 접목해 소득을 창출하고 다양한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6차 산업(농수산업, 제조업,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의 성공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영만 옥천군수는 “갖가지 신비한 효능을 가진 옻은 산업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옥천군이 옻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옻 문화를 대중화하는데도 앞장서 한국 옻산업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옥천=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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