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제공할 반대급부는
“北, 현금 아니라 살 수 있는 환경 원해… 불가침 약속 땐 비핵화할 것”
“김정은이 원하는 건 현금일 수도 있다… 北 경제 개혁에 초점 맞춰야”
#北 비핵화 절차와 검증은
“北, 모든 지역 사찰 보장 후 협정 통해 수용 가능한 시간표 만들어야”
“우리만 요구할 게 아니라, 상대방 측도 구체적 검증 방법 이야기해야”
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8 한국포럼’ 제2세션 ‘비핵화와 평화체제’ 패널토론에선 비핵화의 정의와 검증 방법, 비핵화 이후 북한에 제공할 반대급부 등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북한이 과거의 해묵은 약속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과 이번 회담에 나선 북한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평화 체제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이영성 한국일보 부사장(사회)=비핵화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핵을 모두 없앤다는 것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대표되는 미래의 핵만 다루는 접근이 가능하다. 비핵화의 개념부터 정리해 달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북핵은 관계의 산물이다. 한반도에서 한국 대 북한, 미국 대 북한의 적대 관계가 해소되면 핵 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북한을 범죄자로 단정한 상태에서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비즈니스, 거래의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다. 북한이 CVID를 내놓으면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 보장(CVIG)’을 주겠다고 하는 게 차이점이다.
에번스 리비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선임연구원=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모든 종류의 핵무기와 핵기술, 핵물질을 국외로 반출하거나 폐기하는 단계를 비핵화 최종 단계로 구상할 것이다. 물론 100% 비핵화를 보장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엄격한 사찰 절차를 마련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과거 북한 당국자에게 비핵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북한에 대한 미국 위협의 제거,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폐기”라고 답했다. 북한식 비핵화는 미국과 한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완전히 다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북한이 달라진 점이 분명히 보인다. 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나와서 자신의 가격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됐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도 합의문에 직접 담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다. 과거에는 작은 것 하나를 포기하면서도 반대급부를 요구했지만 이제는 북한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확실히 포기했느냐’, 북한 쪽에서는 ‘미국이 체제를 인정해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지점에 실마리가 있을 지 모른다. 미국은 CVID 이전에는 어느 것도 비핵화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북한은 지금 CVID로 가는 과정인 비핵화를 진행 중이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북한은 최근까지 우선 주한미군이 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검증하자고 했다. 잘못된 ‘기능적 등가성’이다. 미국은 이미 1991년 수백 기 이상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시켰지만 북한은 그 동안 핵무기를 개발했다. 첫 단계부터 북한의 구체적 약속이 있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영변 원자로만 핵 협상 카드로 양보하고 정작 핵무기를 양보하지 않는 게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에게 정말 비핵화 용의가 있고 진정성이 있다면 어느 장소라도 불시에 사찰할 수 있도록 하는 엄격한 매커니즘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리비어 연구원=이미 2005년 9ㆍ19 공동 합의에서 6자 당사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한 비핵화 협정이 있다. 이를 시작점으로 보완해 갈 필요가 있다.
이 부사장=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 한미가 줄 수 있는 반대급부는 무엇인가.
크로닌 소장=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마이너스 보장’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북한이 이를 수용할 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원하는 건 현금일 수도 있다. 북한 경제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 의원=북한이 현금을 원할 수도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현금이 아니라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한미가 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미국은 평화공존과 불가침, 수교를 제시할 수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핵으로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종전이 선언되고 불가침이 약속된다면 더 이상 핵을 갖고 어렵게 살 이유가 없다는 게 북한 입장이다.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이 가장 크게 고무된 것은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한 USB 자료였을 것이다.
쉬웨이디 전 중국 국방대 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판문점 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일종의 보장을 제공했다고 본다. 적대가 없고 서로 대치하지 않는다는 표현 자체가 보장이다. 중국도 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은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고립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 부사장=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보장 등은 언제쯤 어떤 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나.
김 교수=북한은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풍계리와 ICBM 개발을 중단한다고 했고, 심지어 시차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비핵화를 하면 미국도 뭔가 줘야 한다. 북한에게 주는 체제 보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종전 선언이 그것이다. 북한은 체제 생존이 목표인 만큼 선물이 될 수 있다. 만약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 2020년까지 마지막 비핵화를 완성하겠다고 한다면 트럼프에게도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쉬 연구원=보장 제공의 시점도 중요하다. 비핵화 첫 단계가 보장 제공에서 시작될 수 있고, 절차가 진행되면 상호 이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그 시점에 남북한이 서로 더 신뢰하게 되면 누구도 북한 정권 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이 부사장=비핵화와 평화체제 이후 주한미군 위상은.
김 교수=북한은 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 2014년 김 위원장은 ‘미군이 한반도 평화유지군 성격을 가진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전략자산으로 공격적 배치를 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목적인 방어적 미군 주둔이라면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핵 폐기 후에는 남북 군사불균형이 남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오히려 원할 수도 있다.
리비어 연구원=북한의 중장기 목표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였다. 북한이 최근에 구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금 북한이 평화협정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한반도에 전쟁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합의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한국의 안보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정 의원=김 위원장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지정학이다. 한반도가 지정학의 피해국으로부터 수혜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동북아 군비경쟁의 균형자로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있는 게 동북아 평화에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이 부사장=비핵화 절차와 검증은.
크로닌 소장=북한의 핵 보유는 이라크와 리비아보다도 앞선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사찰의 황금률은 불시에 어느 때라도 북한 전역을 사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미가 시간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양보하고 핵자산을 동결할지 구체적인 시간표도 필요하다. 실무 협정을 통해 양측 다 수용 가능한 구체적인 시간표를 만들어야 한다. 2020년 정도면 핵을 동결하는 수준이 적절한 협정이라고 본다. 100%의 비핵화가 아니더라도 북한이 국제사회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핵무기를 동결하면 국제사회도 경제 지원을 할 수 있고 불가침 보장도 할 수 있다.
리비어 연구원=김 위원장이 핵사찰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중대한 조건이 있었다. 직접 사찰단이 핵시설을 방문해서 해체를 목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지 그 이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이 결렬된 중요한 이유는 이와 같은 철저한 검증 절차와 과정을 북한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어떤 점을 약속해야 하는지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폐기할 핵을 kg단위로 세분화해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우리 희망대로 리스트를 제출하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의 핵 보유 리스트와 비교해야 한다. 북한의 진정성을 따져야 한다.
김 교수=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를 끝까지 주장하면 북한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까지는 북한만 양보하는 느낌이다. 김 위원장이 말한 핵실험장 폐기 공개는 ‘와서 보라’는 수준이 아니라 ‘어디를 봐도 좋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
쉬 연구원=검증 과정은 호혜주의에 기반해야 한다. 우리측만 요구할 게 아니라 상대방 측에서도 구체적으로 보장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 지 이야기해야 한다.
▦에번스 리비어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글로벌 경영 전략 컨설팅회사인 올브라이트스톤브릿지그룹 수석국장,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차관보, 주한미대사관 부대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선임연구원이다.
▦정동영
서울대 국사학과와 영국 웨일즈대 카디프대학원 언론학 석사 과정을 나왔다. 방송 기자 출신의 4선 의원이다. 제31대 통일부 장관, 국회 동북아평화협력의원외교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17대 대선에선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였고. 현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이다.
▦패트릭 크로닌
미 플로리다대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석ㆍ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 평화연구소장, 미 국제개발처 행정관, 국가전략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ㆍ태평양 안보국장을 맡고 있다.
▦쉬웨이디
중국 중산대 중문과를 거쳐 화중대 과학기술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육군 대령, 국제연합(UN) 서부사하라 평화유지군 관찰원 및 주둔군 대장, 중국 국방대 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으로 근무했다. 국방 관련 강연자로 유명하다.
▦김준형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미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미래전략연구원 외교안보전략센터 센터장, 참여정부 정책평가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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